봇짐 싸놓고 기다렸습니다! [어우야담]
재혼이 죄였던 시대, 보쌈으로 맺어진 두 사람 [어우야담]
🎬 [대본 타이틀] "봇짐 싸놓고 기다렸습니다!" 맹랑한 과부와 어설픈 나무꾼의 요절복통 위장 보쌈 대작전
🖼️ [썸네일 문구] (유튜브 썸네일 이미지에 들어갈 짧고 강렬한 텍스트) 보쌈하러 갔더니 짐 싸놓고 기다리는 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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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과부 보쌈하기? 에이, 힘으로 무식하게 억지로 업어가는 건 옛날 야만적인 이야기죠! 여기, 언제쯤 보쌈을 당할까 손꼽아 기다리며 미리 봇짐까지 든든하게 싸둔 맹랑한 과부와, 보쌈하러 가면서 심장이 터질 듯 긴장해 청심환을 주워 먹는 어설픈 사내가 있습니다. 엄격했던 조선의 법망을 교묘하고 귀엽게 피해서 꽁냥꽁냥 새 살림을 차린 두 남녀의 요절복통 위장 보쌈 대작전!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겹겹이 쌓인 담장 너머, 몰래 싹트는 수상한 연정
조선시대, 유교의 엄격한 법도와 예법이 사람들의 숨통을 옥죄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남편을 일찍 여읜 과부들에게 세상은 참으로 가혹하고 차가운 곳이었지요. 한 번 혼인하면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다는 '제가 금지'의 굴레는, 꽃다운 나이에 홀로 된 여인들을 평생토록 어두운 규방 안에서 눈물만 짓게 만들었습니다. 열녀문이라는 차가운 명예 하나를 쥐여주고는, 여인의 붉은 심장과 펄떡이는 젊음을 그저 차갑게 식어가는 재처럼 내버려 두기를 강요했던 참으로 모순투성이인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어찌 두꺼운 법전 몇 줄로 꽁꽁 묶어둘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여기, 어느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양반집 담장 안에는 봄날의 복숭아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운 청상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혼인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던 남편은 쿨럭쿨럭 기침만 몇 번 하다가 세상을 훌쩍 떠나버렸지요. 졸지에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고운 나이에 소복을 입게 된 그녀는, 시부모님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별당에 갇혀 낮에는 베를 짜고 밤에는 외로운 달빛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내 팔자야. 남들은 이 좋은 봄날에 꽃놀이를 가고 냇가에서 웃음꽃을 피우건만, 나는 평생 이 답답한 담장 안에서 베틀 소리만 들으며 늙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살겠네, 정말.'
입으로는 늘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지만, 사실 그녀의 두 눈은 베틀을 향해 있으면서도 귀는 담장 밖의 소리에 쫑긋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옆집에 사는 늠름하고 건장한 노총각 때문이었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나무를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 사내는, 비록 가난하여 장가는 못 갔지만 마음씨가 비단결 같고 힘이 장사인 듬직한 청년이었지요. 그 사내가 매일 아침 지게를 지고 산으로 향할 때마다 부르는 흥겨운 콧노래는, 적막한 별당에 갇힌 과부의 마음에 산들바람처럼 불어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과부가 빨래를 널기 위해 담장 근처로 다가갔을 때, 마침 나무를 한가득 짊어지고 돌아오던 사내와 담장 너머로 시선이 딱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사내는 과부의 눈부시게 고운 자태를 보고 그만 넋이 빠져, 어깨에 메고 있던 무거운 나뭇짐을 '와르르' 쏟아버리고 말았지요.
"아이고! 이, 이런 칠칠치 못한 놈! 내 정신 좀 보게!"
사내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 허둥지둥 나무를 줍는 모습을 보며, 과부는 자신도 모르게 '푸훕' 하고 맑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사내는 더더욱 얼이 빠져서는,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줍는 대신 자신의 짚신을 주워 지게에 얹는 기상천외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지요.
'어머나, 세상에. 덩치는 산만 한 사람이 어찌 저리도 어설프고 귀여울까.'
그날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교감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내는 일부러 과부네 집 담장 근처에서 서성이며 크게 헛기침을 하거나, 과부가 좋아할 만한 예쁜 산새 깃털이나 붉은 산딸기를 담장 위에 살며시 올려두고 도망치듯 사라졌습니다. 과부 역시 그 딸기를 몰래 방으로 가져와 오물오물 아껴 먹으며, 사내가 지나갈 시간이 되면 일부러 담장 근처로 나가 옷고름을 고쳐 매는 척하며 얼굴을 슬쩍 비춰주곤 했지요.
"에헴! 오늘따라 유독 날이 좋구려! 저기 핀 저 꽃보다, 담장 안에 핀 백합꽃이 훨씬 더 곱고 아름다운데... 그 꽃을 꺾지 못하는 이 사내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구려."
사내가 담장 너머로 다 들리게 웅얼거리며 넋두리를 하면, 담장 안쪽에서는 과부의 가벼운 헛기침 소리와 함께 작은 조약돌 하나가 톡 하고 사내의 발등 위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비록 서로 손 한번 맞잡아본 적 없고 긴 대화 한번 나누어본 적 없었지만, 겹겹이 가로막힌 차가운 담장 너머로 두 사람의 가슴 속에는 이미 누구도 끌 수 없는 뜨겁고 애틋한 사랑의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했습니다. 과부가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는 날에는, 두 사람 모두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거나 마을에서 쫓겨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깊어가는 연정만큼이나 답답함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던 어느 밤, 사내는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결연한 다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 결심의 끝이 조선이라는 꽉 막힌 세상에 작지만 통쾌한 균열을 낼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 2: 주막집 은밀한 모의, 합법적(?) 사랑의 도피 계획 '보쌈'
늦은 밤, 마을 어귀에 자리한 낡은 주막에는 희미한 호롱불만이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장돌뱅이들과 농꾼들이 한바탕 질펀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간 텅 빈 주막의 구석 평상에, 담장 밖의 그 늠름했던 총각 사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연거푸 쓴 술을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깊은 한숨 소리가 어찌나 땅이 꺼질 듯 컸던지, 부뚜막에서 설거지하던 주모가 참다못해 앞치마에 물기를 닦으며 다가왔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눈치 하나로 이 마을의 모든 소문을 꿰뚫고 있는, 참으로 넉살 좋고 지혜로운 늙은 주모였지요.
"아이고, 이 녀석아! 멀쩡하게 생긴 놈이 뭐가 그리 서러워 땅이 꺼져라 한숨이냐? 네 녀석 한숨 바람에 우리 집 호롱불 다 꺼지겠다, 이놈아! 보아하니 또 그 옆집 양반댁 과부 생각에 속앓이하는 모양이로구나."
주모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사내는 마시던 술에 사레가 들려 캑캑 기침을 해댔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습니다.
"쉿! 주모! 목소리 좀 낮추시오! 혹여나 남들이 들으면 그 고운 분께 몹쓸 누가 된단 말이오. 내 속이 이렇게 시커멓게 타들어 가도, 그저 멀리서 그림자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 팔자가 하도 기가 막혀서 그러오. 내 모든 걸 다 바쳐서라도 그 여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건만, 나라의 법이 이리 꽉 막혀있으니 내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사내가 울컥하여 주먹으로 평상을 쾅 내리치자, 주모는 쯧쯧 혀를 차며 사내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주위를 한 번 더 살피더니, 사내의 얼굴 쪽으로 바짝 다가가 은밀하고 낮게 속삭였습니다.
"어이구, 이 미련한 곰탱이 같은 놈아. 법이 가로막고 있으면, 남들 몰래 훌쩍 뛰어넘을 생각을 해야지! 평생 담장 밖에서 헛기침이나 하다 늙어 죽을 참이냐? 넌 사내대장부란 놈이 어찌 '보쌈'이라는 기가 막힌 방법도 하나 모른단 말이냐!"
"보, 보쌈이요? 아니, 사람을 납치하라는 말씀이오? 그건 천인공노할 짐승 같은 범죄가 아니오! 내 어찌 그 고운 분을 억지로 겁박하여 무식하게 자루에 담아 보쌈을 한단 말이오!"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자, 주모는 답답하다는 듯 사내의 등짝을 매섭게 철썩 내리쳤습니다.
"아이고, 답답아! 진짜 억지로 잡아가라는 게 아니지 않으냐! 겉으로는 무지막지한 납치처럼 꾸며서 시댁 체면도 세워주고, 동네 사람들 입길에도 오르내리지 않게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라는 말이다! 너 그 과부댁과 눈 맞은 지 꽤 되지 않았느냐? 내가 다 알고 있다, 요 녀석아. 과부 입장에서도 자기 발로 당당하게 시댁을 걸어 나가면 조리돌림을 당하지만, 누군가 밤에 억지로 보쌈을 해가서 어쩔 수 없이 재혼하게 되었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도 '아이고, 쯧쯧 가엾어라' 하고 동정하며 넘어가 주는 게 이 조선 팔도의 암묵적인 예의요, 숨구멍이란 말이다!"
주모의 기가 막힌 설명에 사내의 두 눈이 화들짝 커졌습니다. 보쌈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강요된 정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과부들과, 그녀들을 연모하는 사내들이 은밀하게 입을 맞추어 벌이는 합법적인 도주 극이자 구원의 동아줄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이지요. 과연 억눌린 조선의 여인들이 고안해낸 참으로 영리하고도 서글픈 생존방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그럼, 그분도 허락을 하셔야 할 텐데... 만약 내 착각이라도 해서, 진짜 납치인 줄 알고 소리라도 치시면 어쩐단 말이오?"
"걱정 마라, 이 녀석아! 내가 내일 해가 뜨자마자 과부댁 시어머니한테 핑계를 대고 별당에 들어가서, 네 녀석의 그 시커먼 속마음을 아주 달달하게 포장해서 전해줄 테니! 그 맹랑하고 고운 과부가 과연 펄쩍 뛰며 싫다 할지, 아니면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는 내가 기가 막히게 떠보마! 넌 그저 내일 밤 자정 무렵에 크고 튼튼한 자루 하나 구해서 담장 넘을 준비나 단단히 하고 있거라!"
다음 날 낮, 주모의 말대로 일이 참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엿을 팔러 왔다는 핑계로 별당에 은밀히 잠입한 주모가 사내의 절절한 고백과 보쌈 계획을 슬그머니 털어놓자, 놀란 토끼 눈을 하던 과부의 얼굴에는 이내 숨길 수 없는 환한 화색이 돌았습니다. 겉으로는 부끄러운 듯 소매로 입을 가렸지만, 가슴속에서는 당장이라도 담장을 뛰어넘고 싶은 격렬한 환희가 터져 나오고 있었지요.
"아... 아이고, 어찌 그런 남사스러운 일을... 하지만 그분이 진정 저를 위해 그리 험한 일까지 불사하시겠다니... 이 한 몸 어찌 되든, 오늘 밤 달빛에 제 운명을 맡겨보겠다고 전해주시어요."
주모가 전해준 과부의 수줍고도 적극적인 허락에, 사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평생 짊어지던 지게도 내팽개치고, 장터로 달려가 가장 부드럽고 질긴 비단 자루를 샀으며, 혹여나 과부가 자루 안에서 다칠까 봐 그 안에 푹신한 솜까지 정성껏 덧대는 치밀함을 보였지요. 드디어 두 사람이 애타게 기다리던, 결전의 달밤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 3: 결전의 밤, 납치를 기다리며 꽃단장하는 기막힌 과부
드디어 약속한 결전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구름 사이로 창백한 달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와 별당의 툇마루를 비추고, 멀리서 찌르레기 우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는 참으로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담장 밖에서 납치를 준비하는 사내와, 방 안에서 납치를 기다리는 과부의 마음속은 그야말로 폭풍우가 치듯 요동치고 있었지요.
보통의 납치라면 인질이 두려움에 떨며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야 마땅하거늘, 별당 방 안의 풍경은 참으로 기상천외했습니다. 과부는 캄캄한 방 안에서 잠을 자기는커녕, 촛불을 켜놓고 앉아 혼수라도 장만하듯 자신의 봇짐을 야무지게 챙기고 있었습니다.
'이 은장도도 챙기고... 시어머니 몰래 꼬불쳐 둔 옥비녀도 챙기고... 아 참! 사철나무 빛깔 고운 저고리도 하나 넣어야지. 새살림 차리면 곱게 입고 그분께 보여드려야 하니까.'
짐을 다 챙긴 과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거울 앞에 앉았습니다. 혹여나 보쌈을 당해 자루 속에서 굴러 얼굴이 미워 보일까 봐, 연지 곤지를 살짝 찍어 바르고 동백기름으로 머리까지 단정하게 빗어 넘겼지요. 그러고는 가장 아끼는 고운 비단 치마를 껴입고 방 한가운데 다소곳이 앉아, 이 어설픈 납치범이 언제쯤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나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참나, 어찌 된 사내가 남의 집 귀한 과부를 보쌈하러 오면서 이리도 굼뜨단 말인가? 자정이 넘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담장 넘는 소리 하나 없담. 혹시 마음이 변한 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럴 분이 아니지. 내가 미리 담장 옆 개구멍도 뚫어놓고 툇마루 문고리도 헐겁게 열어두었는데... 어서 오시지 않고."
과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하고 있을 무렵, 담장 밖 사내의 사정은 그야말로 진땀을 빼는 중이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복면과 옷으로 치장하고, 등에는 푹신한 솜을 덧댄 커다란 비단 자루를 멘 사내는,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 담장 아래 쪼그려 앉아 심호흡만 수십 번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후우, 떨지 마라. 떨지 마라. 나는 지금 극악무도한 납치범이다! 그 여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거칠고 무서운 척을 해야 한다. 들어가자마자 험악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지 마라!" 하고 윽박지르고, 잽싸게 자루에 담아야 해. 행여나 힘 조절을 못 해서 그 고운 옥체에 멍이라도 들면 안 될 텐데. 아이고, 손에서 왜 이리 땀이 쏟아지는 게냐!'
사내는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은 긴장감을 떨쳐내려 애쓰며, 조심스럽게 담장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평소 지게를 지고 펄펄 날아다니던 힘자랑은 어디로 가고, 행여나 기왓장 하나라도 깨뜨려 그분 놀라게 할까 봐 고양이보다 더 사뿐사뿐 담장을 넘었지요.
마침내 별당 앞마당에 무사히 착지한 사내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과부가 머무는 방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숨을 훅 들이마시고 무서운 기세로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려던 찰나! 사내의 손이 닿기도 전에 방 안에서 먼저 문이 스르륵 열리며, 곱게 단장하고 미리 봇짐까지 다 싼 과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내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나! 깜짝이야!"
"아이고! 깜짝이야!"
납치하러 온 사내와 납치당할 과부가 서로 마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질 뻔한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는 찰나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무섭고 거칠게 납치하려던 사내의 계획은, 너무도 평온하고 눈부시게 예쁜 과부의 모습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 저기... 낭자... 내, 내가 낭자를 억지로, 험악하게 보쌈하러 온 흉악한 놈이오! 소... 소리치면 가만 안 두겠소!"
사내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어설프게 윽박지르는 흉내를 내자, 과부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이며 소매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어쩜 좋아. 복면 사이로 보이는 저 눈망울이 나보다 더 잔뜩 겁을 먹고 있잖아! 어찌 저리도 순박하실까.'
"아아악! 살려주셔요! 이 무슨 무도한 짓이어요! 제발 저를 두고 가셔요!"
과부 역시 동네 사람들이 다 들리게끔 어색하고 과장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고는 쭈뼛거리는 사내의 손에서 푹신한 비단 자루를 확 낚아채더니, 자신의 몸을 반쯤 구부리고는 자루 속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가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천지에 제 발로 납치 자루에 들어가는 맹랑한 인질은 조선 팔도를 다 뒤져도 그녀뿐일 것입니다. 이 기막히고 귀여운 촌극이 달빛 아래 별당 앞마당에서 아슬아슬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 4: 어설픈 납치범과 적극적인 인질의 요절복통 첩보전
자루 속으로 제 발로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려는 과부의 기상천외하고도 적극적인 돌발 행동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사내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험악한 납치범 행세를 하겠다며 산속에서 나무를 베며 수십 번도 넘게 연습했던 무서운 대사들은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져 버렸고, 엉겁결에 과부가 억지로 밀고 들어가는 비단 자루의 주둥이를 두 손으로 공손하고도 조심스럽게 벌려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지요. 게다가 과부는 한술 더 떠서, 미리 야무지게 싸둔 묵직하고 커다란 봇짐까지 자루 안으로 낑낑대며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달빛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기막힌 납치극은 첩보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야반도주를 떠나는 철없는 연인들의 소꿉장난처럼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낭, 낭자!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시추에이션... 아니, 무슨 짓이오! 명색이 야밤의 무시무시한 납치는 내가 주도해서 억지로 하는 것인데, 어찌 낭자가 스스로 짐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자루 속으로 기어 들어간단 말이오! 그리고 그 엄청난 크기의 봇짐은 또 웬 말이오? 자루가 버티지 못하고 찢어지겠소! 행여나 낭자의 고운 몸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이러시오!"
사내가 당황하여 더듬거리며 말리려 하자, 과부는 자루 속에서 동그란 고개만 쏙 내밀고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맑은 눈망울로 사내를 톡 쏘아보며 작게 속삭였습니다.
"아유, 참으로 답답하셔라! 명색이 남의 집 귀한 과부를 보쌈하러 오셨으면서 어찌 이리 눈치가 없으시고 행동이 굼뜨셔요? 동네 사람들이 이 소란에 다 깨서 구경이라도 나오기 전에, 얼른 저를 짐짝처럼 들쳐 업고 저 높은 담장을 훌쩍 넘으셔야 할 것 아니어요! 그리고 이 봇짐 안에는 제가 시집올 때 가져왔던 귀한 패물이며, 우리가 첩첩산중으로 도망가서 새살림을 차릴 때 쓸 소중한 밑천이 다 들어있으니 절대로 바닥에 떨어뜨리시면 아니 되어요. 자, 제 말 알아들으셨으면 얼른 자루 끈을 단단히 묶고 저를 등에 덥석 업으셔요!"
과부의 적극적이고도 당찬 지시에 사내는 잠시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서 있었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이 어설프고 기막힌 위장 납치극을 무사히 성공시키려면, 자신보다 훨씬 침착하고 계획적인 과부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사내는 행여나 과부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엉킬까 봐 조심조심 비단 자루의 끈을 여미고 묶었습니다. 그리고 평소 깊은 산속에서 무거운 참나무 한 짐을 거뜬히 지어 나르던 넓고 튼튼한 등으로 자루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사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한 비단 자루 안에는 최고급 푹신한 솜이 두껍게 덧대어져 있어, 과부가 행여나 딱딱한 등에 부딪혀 다치지 않게 배려한 사내의 다정하고 따뜻한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졌지요.
"아아악! 이놈, 사람 살려라! 이 무도하고 흉악한 도적놈아, 나를 당장 내려놓지 못할까! 뉘 집 규수인 줄 알고 감히 이리 무례한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
사내의 넓은 등에 업히자마자 과부는 다시 한번 혼신의 힘을 다해, 온 동네 개들이 다 짖어댈 만큼 동네가 떠나가라 가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그럴싸하고 실감 나는 명연기에 사내 역시 지지 않고, 짐짓 산적처럼 굵고 험악한 목소리를 한껏 꾸며내어 맞장구를 쳤습니다.
"에잇! 시끄럽다, 이 여편네야! 네년이 아무리 버둥거리고 발버둥 쳐도 이제는 아무 소용없다! 오늘 밤부터 너는 이 몸의 마누라가 되어 산골짜기에서 평생 밭이나 매고 살아야 할 것이니, 잔말 말고 내 등에 얌전히 업혀 있거라! 한 번만 더 소리를 질렀다가는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다!"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주거니 받거니 내뱉는 대사는 영락없는 흉악한 납치범과 가엾은 인질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지만, 둥근 보름달 빛 아래 비친 두 사람의 진짜 모습은 참으로 요절복통 코미디가 따로 없었습니다. 사내는 과부가 행여나 흔들려서 멀미라도 할까 봐 자루를 꽉 받친 두 손과 팔뚝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과부는 자루 속에서 사내의 넓은 등에 뺨을 포근하게 기대며 쿵쾅거리는 그의 따뜻한 심장 박동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자장가 삼아 듣고 있었으니까요.
'어머나, 밖에서 지게를 지고 다니실 때는 그저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기만 하셨는데, 이분의 등이 이리도 바위처럼 넓고 따뜻할 줄이야. 겉보기엔 무뚝뚝한 산적 같아 보여도 나를 안아 든 이 손길이며 자루 속의 솜을 보니 마음 씀씀이는 어찌 이리도 비단결처럼 고울까. 내 평생 이 든든한 등에 업혀 비바람을 피하고 살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겠구나.'
과부가 자루 속에서 달콤한 상상에 빠져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이 낭만적인 첩보전은 앞마당을 지나 별당 담장을 넘는 순간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채소 반찬만 먹고 살았던 과부의 몸무게 자체는 깃털처럼 가벼웠으나, 그녀가 자루 속에 꽉꽉 눌러 담은 놋그릇이며 온갖 혼수 봇짐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사내가 있는 힘껏 끙끙대며 높은 담장 위로 한쪽 발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순간, 자루 안에서 무거운 봇짐이 휙 하고 한쪽으로 쏠리며 사내의 몸이 기우뚱하고 중심을 크게 잃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낭자! 자루 안의 짐이 한쪽으로 너무 무겁게 쏠려서 내 몸이 담장 밖으로 고꾸라질 것 같소! 숨을 참으시고 꽉 잡으시오!"
"어머머! 안 돼, 안 돼! 그렇게 흔들리면 봇짐 안에 든 제 소중한 옥비녀와 거울이 담벼락에 부딪혀 산산조각 깨진단 말이에요! 서방님, 제발 조심해서 엉덩이 쪽을 좀 더 번쩍 들어 올리셔요! 어서요!"
담장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이 급박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온 과부의 '서방님'이라는 은연중의 호칭에, 사내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 거대한 불덩이가 훅 하고 들어온 듯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그 달콤한 한마디는 사내의 온몸에 잠들어 있던 어마어마한 아드레날린을 깨웠고, 사내는 평소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으라차차!" 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단숨에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장 위를 뛰어넘어 밖으로 사뿐히 착지한 사내는,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도 등 뒤의 자루 속 과부를 향해 헤벌쭉 바보 같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비록 세상의 눈을 속인 위장된 보쌈이었지만, 겹겹이 쌓인 유교의 억압적인 규범과 숨 막히는 담장을 마침내 통쾌하게 뛰어넘어 서로의 마음을 완벽하게 확인한 두 남녀의 은밀하고도 유쾌한 도주 극은, 그렇게 심장 쫄깃하면서도 성공적인 첫발을 밤의 어둠 속으로 내디뎠습니다.
※ 5: 시댁의 눈물겨운 은밀한 배웅과 달빛 아래 도주극
사내가 과부가 들어 있는 무거운 비단 자루를 든든한 등에 단단히 고쳐 업고 별당 담장 밖의 좁은 골목길로 막 도망치듯 달아나려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굳게 닫혀 있던 안채 쪽에서 와장창 문이 열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다급하고 날카로운 발자국 소리가 쿵쿵대며 들려왔습니다.
"아이고! 이게 한밤중에 대체 무슨 소란이란 말이냐! 며늘아가! 우리 가엾고 불쌍한 며늘아가가 홀로 지내는 별당에 무슨 끔찍한 일이 생겼단 말이냐! 게 아무도 없느냐!"
과부의 시어머니가 하얀 잠옷 바람으로 겉옷조차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허둥지둥 별당 앞마당으로 뛰어나온 것입니다. 그녀의 주름진 손에는 불이 켜진 촛대가 매서운 밤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다급함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담장 밖 짙은 어둠 속에 숨어 숨을 죽인 채 이 아찔한 광경을 지켜보던 사내는, 그야말로 심장이 멎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뿔싸, 큰일 났다! 도망치기도 전에 시어머니께 딱 걸리고 말았구나! 이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들통나면 나는 당장 관아로 질벌질벌 끌려가 곤장을 맞고 옥살이를 할 것이고, 내 등에 업힌 낭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더러운 수모를 겪으며 집안의 수치로 손가락질받게 될 터인데!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사내가 등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지도 못한 채, 자루를 멘 채로 냅다 산속으로 도망갈 궁리를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담장 너머 마당에서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애끓는 곡성이, 가만히 듣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참으로 기이하고 부자연스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야심하고 캄캄한 밤에 웬 산채만 한 흉악한 도적놈이 우리 집 담장을 훌쩍 넘어와서 우리 금쪽같이 귀하고 불쌍한 며늘아기를 억지로 보쌈해 간단 말인가! 늙고 병들어 힘없는 이 할미가 어찌 저 힘센 장정을 힘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내 눈앞에서 며느리를 빼앗기다니 통탄할 노릇이로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도둑이야! 무도한 납치범이 들었소! 내 며느리를 살려주오!"
분명 하늘을 우러러 대성통곡을 하며 악을 쓰고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시어머니의 발걸음은 절대로 담장 밖 골목으로 쫓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문을 향해 급히 뛰어가는 척 과장된 발걸음 소리를 내다가 슬그머니 담장 안쪽 그늘에 멈춰 서서는, 허공을 향해 매우 크고 연극적인 목소리로 동네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 철저히 계산된 대사를 읊조리듯 소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낮에 넉살 좋은 주모가 엿을 팔러 왔다는 핑계로 안채에 들렀을 때, 산전수전 다 겪으며 눈치 하나로 살아온 시어머니는 주모의 떠보는 말 한마디에 이미 모든 상황의 전말을 정확하게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꽃다운 나이인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고운 며느리가, 죽은 아들을 대신해 평생 차가운 수절을 하며 햇빛도 들지 않는 별당에서 꽃처럼 시들어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시어머니에게도 매일매일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크나큰 고통이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었습니다. 비록 뼈대 있는 양반가의 체면과 나라의 엄격한 유교 법도 때문에 대놓고 며느리의 재혼을 허락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씨 곧고 성실한 이웃집 총각이 며느리를 깊이 연모하여 보쌈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그녀를 구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자, 시어머니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 거대한 사기극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굳게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보시오, 어둠 속에 숨은 도적놈! 네놈이 정 어쩔 수 없이 무력을 써서 우리 며느리를 억지로 데려가려거든 내 한마디만 하겠다! 부디 그 착하고 여린 아이의 눈에서 다시는 피눈물 나게 하지 말고, 평생 고생한 그 고운 손에 찬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목숨을 바쳐 아껴주어야 할 것이야! 만약 네놈이 그 아이를 박대하고 그리 애지중지하지 않으면, 이 할미가 죽어 저승의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놈의 목을 조르고 가만두지 않을 터이니, 뼛속 깊이 명심 또 명심하거라! 아이고, 불쌍한 내 며늘아기야! 부디 모진 목숨 잘 부지하고 살아남거라!"
담장 밖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이 절절하고 뼈 있는 당부의 말을 고스란히 듣게 된 사내는, 그제야 시어머니의 한없이 깊고도 넓은 속내를 깨닫고 왈칵 뜨거운 눈물을 비 오듯 쏟고 말았습니다. 겉으로는 보쌈이라는 끔찍하고 무자비한 범죄의 형태를 띠며 악을 쓰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홀로 남은 며느리의 새로운 출발을 찢어지는 가슴으로 응원하는 시어머니의 크나큰 사랑과, 남은 가족들의 체면을 완벽하게 살려주기 위한 가슴 시리도록 따뜻한 배려가 겹겹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루 속에서 숨죽여 훌쩍이며 울고 있던 과부 역시, 시어머니의 마지막 은밀하고도 애틋한 배웅의 목소리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거대한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어머님... 저의 불효를 부디 용서하시옵소서. 부족한 저를 딸처럼 아껴주신 그 크나큰 은혜, 다음 생에 태어나면 곁에서 평생 모시며 꼭 갚겠나이다. 부디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과부는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캄캄한 자루 속에서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은 채 조용히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어르신! 걱정 마시옵소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제가 제 목숨을 온전히 걸고 이 귀한 낭자를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지켜주겠나이다!"
사내는 시어머니가 서 있는 안채의 담장을 향해 어둠 속에서 마음속으로 가장 깊고 정중한 큰절을 세 번 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옷고름을 고쳐 매고 발걸음을 돌려, 인적이 드문 험난하고 어두운 산길을 향해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유교의 법도가 촘촘한 그물처럼 지배하던 답답한 세상에서, 그 엄격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면서도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기어코 사랑을 이뤄낸, 참으로 눈물겹고도 아름다운 조선판 '보쌈' 도주 극이 그렇게 달빛이 부서지는 밤길 위에서 완벽하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 6: 새 고을에서 당당하게 피워낸 웃음꽃
그 운명적인 보쌈의 밤으로부터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달포가량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첩첩산중의 험한 고개를 몇 개나 넘고 강을 건너, 원래 살던 고을에서는 소문조차 닿지 않을 만큼 수백 리나 아득히 떨어진 참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산골짜기 새 고을에 두 사람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침내 마련되었습니다. 사내가 평생을 나무를 하며 땀 흘려 악착같이 모은 은전들과 과부가 비단 자루 속 봇짐에 야무지게 챙겨 온 옥비녀 등 새살림 밑천을 보태어, 양지바른 산기슭에 작지만 아담하고 채광이 참으로 좋은 예쁜 초가집 한 채를 얻은 것입니다. 마당에는 작은 텃밭도 일구고, 처마 밑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트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었지요.
아침의 맑은 햇살이 구멍 하나 없이 깨끗하게 새로 바른 창호지를 뚫고 방안으로 화사하게 비쳐 드는 어느 날의 아침. 그동안 사방이 막힌 별당의 어두운 그늘 속에 갇혀 우울하게 지내던 과부의 얼굴에는, 마치 봄비에 씻겨 활짝 피어난 복숭아꽃처럼 그 어느 때보다 환하고 눈부신 미소가 가득 차올라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하얀 소복을 입고 처량하게 눈물짓던 외로운 청상과부가 아니었습니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머리를 정갈하고 곱게 땋아 올려 은비녀를 찌르고, 남편이 장터에서 사다 준 화사한 색동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입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새댁의 완벽한 모습이었지요.
"서방님! 해가 중천에 떴사옵니다. 얼른 눈을 뜨고 일어나셔요. 오늘은 장터에 나무를 내다 파시러 가실 시간이지 않습니까. 제가 서방님 기운 내시라고 아침 일찍 일어나 따끈한 쌀밥과 구수한 냉이 된장국을 펄펄 끓여 놓았으니, 식기 전에 얼른 나오셔서 드셔요."
부엌에서 아궁이에 군불을 때며 맑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아내가 옹기종기 반찬을 담은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아침상을 차려 들고나왔습니다. 그 경쾌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방 안에서 곯아떨어져 있던 사내는 밤새 꾼 기분 좋은 꿈에서 깨어나듯 두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방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산바람이 부는 마루로 나가보니,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담장 밖에서 흠모하며 평생을 곁에 두고 지켜주고 싶어 했던 그 고운 여인이, 아내가 되어 자신을 향해 활짝 꽃처럼 웃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겪는 일임에도 이 모든 완벽한 일상이 아직도 기적 같고 믿기지 않는 듯, 자신의 까칠한 볼을 힘껏 꼬집어보며 헤벌쭉 바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아이고, 부인. 이게 정녕 내가 죽어 환생한 것이 아니고 살아 숨 쉬는 현실이란 말이오? 내가 그토록 가슴앓이하며 연모하던 부인과 마주 앉아, 이렇게 구수하고 따뜻한 아침밥을 평생 먹게 되다니! 내 전생에 이 나라를 두 번 세 번 구한 것이 틀림없소이다! 그날 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그 무거운 자루를 메고 산을 세 개나 헐떡이며 넘은 보람이 오늘 아침에도 차고 넘치구려!"
"어머나, 호호호! 서방님도 참, 또 그날 밤 이야기이셔요? 봇짐이 무겁다고 담장을 넘을 때 어찌나 끙끙대시며 다리를 파들파들 떠시던지, 제가 담장 위에서 자루를 찢고 봇짐을 버려야 하나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아셔요? 그래도 땀범벅이 되어서도 끝까지 제 손을 놓지 않고 이 든든하고 넓은 등으로 밤새워 저를 업어주셔서, 제 평생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사내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그예 감격에 겨워 아내의 두 손을 덥석 다정하게 맞잡았습니다. 도끼질을 하느라 거칠고 굳은살이 박인 나무꾼의 투박한 큰 손과, 평생 바느질만 하던 고운 규수의 부드럽고 하얀 손이 따스하게 맞닿은 순간, 두 사람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깊은 충만함과 서로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느꼈습니다.
"부인, 내 비록 글공부에는 까막눈이라 유식한 말은 할 줄 모르고, 가진 것이라곤 이 두 팔의 튼튼한 힘밖에 없는 바보 같은 놈이지만, 내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평생 부인 눈에 슬픈 눈물 한 방울 절대 흘리지 않게 애지중지 아껴주고 사랑하겠소. 세상의 눈을 속이고 우리 둘만의 은밀한 보쌈으로 맺어진 이 천금같이 귀한 인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매일매일 알콩달콩 예쁘게만 살아봅시다."
조선 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기록한 야담집 『어우야담』 속에는 이처럼 엄격한 법과 제도라는 차가운 철벽 앞에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라는 뜨거운 마음으로 그 잔인한 한계를 유쾌하고도 지혜롭게 뛰어넘은 백성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전해 내려옵니다. '보쌈'이라는 독특한 풍속이 현대의 잣대로 보기에는 여인을 물건처럼 훔쳐 가는 야만적인 납치 범죄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홀로 되어 버려진 여인들의 불행한 삶을 끝내고 새로운 출발을 암묵적으로 돕기 위해, 그리고 가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이 기꺼이 눈을 감아주었던 참으로 인간적이고 따뜻한 무언의 약속이자 생존을 위한 사회적 모의가 숨어 있었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하고 순수한 연정과 담장을 넘을 용기 하나로, 시대의 무거운 굴레를 훌쩍 뛰어넘어버린 지혜로운 과부와 듬직한 나무꾼 사내. 두 사람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작은 초가집 마당에는 어느새 흐드러지게 핀 화사한 봄꽃 향기가 온 골짜기를 가득 채웠고, 부부로 다시 태어난 그들의 앞날에는 퍼내어도 퍼내어도 절대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끝없는 행복과 경쾌한 웃음꽃만이 사시사철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었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어우야담』 속 유쾌하고도 달달한 '위장 보쌈'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꽉 막힌 시대의 법도 앞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사랑을 쟁취한 두 사람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억지로 잡아가는 무서운 보쌈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맞아 꽁냥꽁냥 만들어낸 합법적(?) 사랑의 도피극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죠!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주었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부탁드려요! 다음엔 더 재미있고 놀라운 옛날이야기로 찾아올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