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신랑, 아내는 따로 있었다 『청구야담』
괴물 신랑, 아내는 따로 있었다 『청구야담』
혼례 첫날밤 비겁한 신부가 신랑이 흉하게 생겼다는 소문에 몸종을 대신 들여보내자, 신랑은 그 뜨거운 하룻밤으로 몸종의 신분을 알아보고, 모른측 아내로 맞이하는 인과응보 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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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300자 미만)
"저토록 흉측한 괴물과 첫날밤을 보낼 순 없어. 네가 내 대신 신방에 들어가거라!" 오만하고 이기적인 양반집 규수는 신랑이 흉측한 추남이라는 소문에 제 몸종을 신방으로 밀어 넣는다. 어둠 속, 괴물인 줄 알았던 신랑의 품은 한없이 따뜻하고 강인했다. 하룻밤의 뜨거운 정사 속에서 거칠고 투박한 손을 통해 가짜 신부임을 눈치챈 신랑. 하지만 그는 이 운명적인 하룻밤의 언약을 가슴에 품고, 놀라운 반전을 준비하는데! 비겁한 신부의 몰락과 몸종의 짜릿한 운명 역전 야담!
※ 1: 흉측한 소문과 이기적인 신부의 흉계
봄꽃이 만발하여 온 동네에 짙은 매화 향기가 진동하는 화창한 어느 날. 장안에서 가장 콧대가 높기로 소문난 김 참판 댁에서는 외동딸 소희의 혼례 잔치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마당에는 수백 명의 하객이 몰려들어 풍악을 울리고 잔치 음식을 나누며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정작 혼례식의 주인공인 신부가 대기하고 있는 안채 깊숙한 규방 안은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날 선 긴장감이 팽팽하게 맴돌고 있었다.
장안 최고의 미색이라 자부하며 콧대 높게 굴던 소희는, 정략혼으로 맺어진 자신의 새신랑 이 생에 대해 최근 끔찍한 소문을 전해 들은 터였다. 이 생이 어릴 적 몹쓸 병을 앓아 얼굴 반쪽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물 같은 추남이며, 성정마저 포악하여 제집 하인들을 짐승처럼 부린다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권문세가와의 혼맥을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참판은 딸의 눈물 섞인 반대를 강압적으로 억누르고 혼례를 강행했다. 낮에 치러진 교배례 때도 이 생은 사모관대를 푹 눌러쓰고 부채로 교묘하게 얼굴을 가린 채 의식을 치러, 소희는 소문이 사실임을 굳게 믿게 되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붉은 청사초롱이 하나둘 불을 밝히며 끔찍한 첫날밤이 다가오자 소희의 방 안은 공포와 짜증으로 가득 찼다.
'어찌 나같이 아름답고 고귀한 몸이 저런 흉측한 괴물의 품에 안겨야 한단 말인가! 아버님도 무심하시지, 내 어찌 저런 흉물과 살을 섞는단 말이냐.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소희는 화려한 활옷을 입은 채 파들파들 떨다가, 방 한구석에서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몸종 월향을 독기 어린 눈으로 쏘아보았다. 월향은 비록 비루한 무명옷을 입고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천한 노비였으나, 그 이목구비만큼은 웬만한 양반집 규수들을 압도할 만큼 청초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소희는 평소에도 자신보다 고운 월향의 미색을 질투하여 툭하면 매질을 하고 구박을 일삼았지만, 지금 이 위기를 모면할 제물로는 그녀만 한 자가 없었다.
"월향아. 월향이 네 이년, 썩 내 앞 가까이 오지 못할까!"
소희의 날카로운 부름에 월향은 움찔하며 고개를 숙인 채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예, 아기씨. 부르셨사옵니까."
소희는 다짜고짜 자신의 머리에 얹힌 무겁고 화려한 족두리를 거칠게 벗어 월향의 무릎 앞에 툭 던졌다.
"네가 오늘 밤, 내 대신 저 신방에 들어가야겠다. 네년도 소문을 들어 알 터! 그 흉측한 괴물 사내의 품에 어찌 내 고귀한 몸을 눕힐 수 있겠느냐. 당장 이 활옷을 입어라!"
월향의 커다란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아, 아기씨! 어찌 그런 당치도 않은 하명을 하십니까. 천한 종년이 어찌 아기씨의 신방에 대신 들 수 있사옵니까. 이는 훗날 발각되면 뼈도 추리지 못할 대역죄이옵니다. 제발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시끄럽다! 네년의 목숨은 어차피 내 손에 달린 파리 목숨이 아니더냐. 첫날밤은 어둠 속에서 치러지는 법. 촛불만 꺼버리면 그 눈먼 괴물 놈이 양반인지 종년인지 어찌 구분을 한단 말이냐. 밤새 그놈의 욕정을 받아내고 날이 밝기 전 새벽에 몰래 빠져나오기만 하면, 내 너를 당장 면천시켜 평민으로 살게 해 줄 것이다. 허나, 내 명을 거역한다면 내일 아침 당장 멍석을 말아 네년을 쳐죽이고 말 것이다!"
소희의 매서운 협박과 끔찍한 강요에 월향은 바닥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태어날 때부터 종으로 태어나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본 적 없는 가엾은 인생이었다. 짐승처럼 매를 맞으며 늙어 죽을 바에야, 괴물의 품을 하룻밤 견뎌내고 면천을 받아 자유를 얻는 것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일지도 몰랐다.
월향은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소희가 벗어던진 화려한 붉은 활옷을 주워 입었다. 거친 무명 적삼을 벗어내고 비단옷을 걸치자, 월향의 감춰져 있던 눈부신 자태가 비로소 빛을 발했다. 소희조차 질투심에 입술을 깨물 만큼, 활옷을 입은 월향은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고 처연했다.
"명심해라. 방에 놈이 들어오면 당장 촛불부터 꺼버려야 한다. 행여나 놈이 네년의 얼굴을 보려 하거든 절대 목소리를 내지 말고 피해야 해. 만약 네년이 실수하여 이 모든 것이 발각된다면, 그날로 네년은 죽은 목숨인 줄 알아라."
월향은 소리 없는 눈물을 뺨으로 훔쳐내며 족두리를 깊게 눌러 썼다. 소희의 비열하고도 잔혹한 눈동자를 뒤로한 채 돌아선 월향의 발걸음은 형장으로 향하는 죄수처럼 무겁고 비참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흉측한 괴물이 기다리는 죽음 같은 신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억울하고 비참한 가짜 신부 행세가, 평생 진흙탕 속에 처박혀 있던 그녀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가장 눈부시고도 치명적인 첫 단추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 2: 어둠이 내려앉은 신방, 떨리는 가짜 신부
화려한 최고급 비단과 붉은 모란꽃으로 화사하게 꾸며진 최 참판 댁의 가장 깊숙하고 내밀한 별당 신방 안. 방 한가운데에는 붉은 비단에 십장생을 정교하게 수놓은 두꺼운 금침이 폭신하게 깔려 있었고, 한 쌍의 원앙이 금실로 촘촘하게 그려진 병풍 앞에는 촛불 두 자루가 일렁이며 위태롭고도 요염한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족두리를 쓴 채 화려한 활옷을 겹겹이 껴입은 가짜 신부, 월향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금침 위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다가올 끔찍하고 기구한 운명을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바깥채를 오가며 장안에 파다하게 퍼진 흉흉한 소문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얼굴의 반쪽이 심한 흉터로 괴물처럼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고, 성질이 악귀처럼 잔혹하여 사람의 살을 베어 넘기고 피를 보는 것을 일상의 가벼운 놀이처럼 여긴다는 새신랑 이 생. 평생을 주인 아기씨의 모진 매질과 굶주림 속에 서럽게 살아온 그녀였지만, 얼굴도 모르는 흉측하고 잔인한 사내에게 처음으로 제 깨끗하고 순결한 몸을 억지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드는 거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내 치마끈을 풀어 목을 매고 혀를 깨물어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토록 비참하게 내 몸을 찢기우며 유린당해야 한단 말인가. 허나… 허나 내가 여기서 도망치거나 죽어버리면, 독기 오른 아기씨는 내 늙고 병든 어미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룻밤이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숨을 꾹 참으며 살을 내어주는 이 지옥 같은 하룻밤만 견뎌내면, 면천을 받아 내 어미와 사람답게, 평범한 백성으로 살 수 있다. 견뎌야 한다. 기필코 견뎌내야만 한다.'
월향이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붉은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며 속으로 수백 번의 다짐을 처절하게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럽게 문고리가 돌아가며 끼익, 하는 무거운 소리가 신방의 숨 막히는 정적을 잔인하게 찢어발겼다. 월향의 심장이 당장이라도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듯이 거칠게 고동쳤다. 미세하게 열린 문틈으로 봄밤의 서늘하고 옅은 밤공기가 훅 끼쳐왔고, 묵직하고도 일정한 간격의 발소리가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괴물처럼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기괴하고 난폭한 걸음걸이일 것이라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방바닥을 내딛는 사내의 발소리는 무척이나 단정하고 태산처럼 고요하며 침착했다.
사내가 방 한가운데로 다가오자, 월향은 소희가 매섭게 일러준 대로 자신의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급히 몸을 일으켜 촛불부터 끄려 했다. 그러나 극도로 긴장한 탓에, 평소 입어본 적 없는 길고 무거운 활옷 자락을 제 발로 밟고 휘청이며 방바닥으로 엎어질 뻔한 찰나였다. 크고 단단하며 뜨거운 사내의 팔이 허공을 가르더니, 엎어지려던 그녀의 얇은 허리를 단숨에 휘감아 제 쪽으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어허, 조심하시오. 좋은 날 혼례 첫날밤부터 어여쁜 신부가 다쳐서 피를 보면 쓰겠소."
귓가에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사내의 목소리는 월향의 끔찍했던 예상을 완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빗나간 것이었다. 괴물처럼 흉측하게 긁히고 갈라진 짐승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깊은 산속의 고요한 우물처럼 한없이 깊고 청아하며, 봄바람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여인의 뼛속을 기분 좋게 울리는 짙고 매력적인 사내의 묵직한 음성이었다.
월향은 사내의 넓고 단단한 가슴팍에 빈틈없이 안긴 채 놀라 숨을 들이켰다. 사내의 품에서는 피비린내나 역겨운 짐승의 냄새 대신, 은은하게 퍼지는 맑은 묵향과 깊은 숲의 청량한 향기가 났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사내의 품에서 벗어나 얼굴을 숨기려 했지만, 이 생은 그녀의 허리를 꽉 감은 팔을 다정하게 풀지 않은 채, 다른 한 손을 여유롭게 뻗어 방 안의 촛불 두 자루를 단숨에 훅, 불어서 꺼버렸다.
순식간에 찾아온 완벽하고도 칠흑 같은 어둠.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희미한 달빛조차 두꺼운 비단 병풍에 가려져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먹물 같은 어둠이었다. 소희의 명대로 자신이 어떻게든 촛불을 꺼야 했거늘, 사내가 먼저 선수를 쳐 촛불을 끈 것에 당황한 월향은 어둠 속에서 파들파들 떨며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 밤은 오롯이 우리 두 사람만의 은밀하고도 귀한 시간이오. 아직 서로가 낯선데, 환한 불빛 아래 서로를 적나라하게 마주하는 것은 신부에게 몹시 쑥스러운 일일 터이니, 내 배려하여 불을 껐소. 나를 두려워하지 마시오."
어둠 속에서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이는 이 생의 목소리는 한없이 따뜻하고 깊었다. 소문 속의 포악하고 잔인하며 흉측한 괴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다정함이었다. 월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행여나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어 진짜 신부가 아닌 가짜 신부임이 들통날까 봐, 거칠어지는 숨소리조차 필사적으로 죽여야만 했다.
이 생의 크고 따뜻한 두 손이 월향의 머리 위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그녀의 얇은 목을 짓누르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족두리를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벗겨내어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짤랑, 하는 맑은 금속음과 함께 그녀의 풍성하고 고운 까만 머리칼이 어둠 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흘러내렸다.
"부인. 내 얼굴에 대한 흉흉하고 끔찍한 소문을 들어 혼례를 치르기 전부터 몹시 마음을 끓이고 두로우셨겠지요. 허나 걱정하지 마시오. 내 오늘 밤, 당신의 그 고운 몸에 작은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니. 그저 내 품에 온전히 기대어 당신의 모든 것을 맡겨 주시오."
이 생의 크고 거친, 그러나 한없이 따뜻한 손이 월향의 가녀린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한평생 누군가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사랑받거나 보호받아 본 적 없이, 짐승처럼 매질만 당하며 차가운 바닥에서 살아온 월향이었다. 완벽한 어둠 속, 자신의 천한 정체를 모른 채 진정한 아내로서 다가오는 이 낯선 사내의 맹목적인 다정함과, 바위처럼 든든한 따뜻한 품의 온기는, 십 년 넘게 얼어붙어 있던 월향의 멍든 영혼을 단숨에 녹여버릴 만큼 치명적이고 눈물겨운 것이었다. 월향의 커다란 두 눈에서 기어이 참았던 소리 없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려, 그녀의 뺨을 감싸고 있던 사내의 손등 위로 뜨겁게 떨어졌다.
사내는 그 뜨겁고도 서러운 눈물방울의 촉감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더 깊고 단단하게 그녀를 제 품으로 빈틈없이 끌어당겼다. 괴물의 끔찍한 품일 것이라 겁에 질려 파들파들 떨었던 어둠 속의 신방은, 어느새 난생처음 느껴보는 아찔하고도 압도적인 사내의 온기로 꽉 채워지고 있었다.
※ 3: 굳은살 박인 손, 진실을 품은 뜨거운 언약
신방의 짙고 고요한 침묵을 깨는 것은, 서로의 체온에 닿아 거칠고 다급하게 터져 나오는 두 사람의 더운 숨소리뿐이었다. 이 생은 더 이상 사내로서의 본능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맹렬하면서도 유리가 바스러질까 조심하듯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월향의 가는 허리를 단숨에 끌어안고, 단단한 제 품으로 그녀를 옭아맸다. 월향의 작고 여린 체구가 그의 넓고 탄탄한 가슴 안에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밀착되었다.
이 생의 뜨겁고 갈증에 찬 입술이 어둠 속을 부드럽게 더듬어 월향의 눈물 젖은 뺨을 지나, 마침내 그녀의 붉고 촉촉한 입술을 부드럽게, 그러나 이내 집어삼킬 듯 깊고 농밀하게 포갰다. 한 번도 사내와 살을 섞어보거나 애틋한 입맞춤을 나누어 본 적 없는 월향은 처음 경험하는 낯설고 아찔한 감각에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짐승처럼 거칠면서도 애가 타는 듯 애틋한 사내의 입맞춤에,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두 팔을 뻗어 그의 단단한 목을 끌어안고 말았다. 숨이 막힐 듯한 짜릿함이 그녀의 전신을 찌릿하게 관통했다.
사르륵, 투둑. 겹겹이 꽁꽁 싸매여 있던 화려한 비단 활옷과 저고리 고름이 이 생의 다급하고 거친 손길에 의해 바닥으로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월향은 여인으로서의 수치심과 천한 몸종이라는 두려움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지만, 이 생은 그녀의 둥글고 여린 어깨를 폭신한 비단 금침 위로 조심스럽게 눕히고는 연신 다정하고 애타는 입맞춤을 이마와 귓가에 퍼부어 그녀를 안심시켰다.
어둠 속, 이 생의 크고 따뜻한 사내의 손이 월향의 하얗고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훑어 내렸다. 그녀의 숨결이 점차 거칠어지고 달아오를 무렵, 그녀의 가는 허리를 지나 부드러운 손목을 꽉 잡아채어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끼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월향의 맨손을 맞잡은 이 생의 맹렬했던 움직임이 찰나의 순간 멈칫하며 굳어졌다.
그의 섬세한 손끝에 닿은 여인의 손. 그것은 평생 규방에 앉아 비단실로 고운 수나 놓으며 흙 한 번 만져보지 않고 곱게 자란, 양반집 고명딸의 매끄럽고 보드라운 솜털 같은 손이 절대 아니었다. 한겨울 차가운 냇물에 빨래를 치대고, 거친 무쇠솥을 닦아내며 장작을 패느라 마디마디가 사내처럼 굵게 불거져 있고, 피부는 거칠게 일어나 있으며,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단단한 굳은살이 흉하게 박여 있는, 전형적인 허드렛일하는 몸종의 몹시 거칠고 투박한 손이었다.
이 생의 날카롭고 예리한 이성이 욕정 속에서도 순간 번뜩였다. 낮에 치러진 교배례 때 부채 너머로 언뜻 보았던 김 참판 댁 고명딸의 그 오만방자하던 눈빛과 기고만장한 태도, 그리고 지금 제 품에서 파들파들 떨고 있는 이 여인의 처연하고도 눈물겨울 만큼 순종적인 몸짓은 아예 근본부터가 완벽하게 달랐다.
'양반집 귀한 규수의 손이 이리도 굳은살투성이일 리가 절대 없지 않은가. 내 얼굴에 흉측한 상처가 있다는 거짓 소문에 속아 넘어가, 지레 겁을 먹고 제 몸종을 대신 희생양으로 신방에 밀어 넣은 것이로구나. 참으로 어리석고 얄팍하며 비겁한 양반들의 작태로다.'
모든 진실을 단숨에 꿰뚫어 본 이 생의 입가에, 어둠을 틈타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운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당장 방 안의 촛불을 켜고 이 끔찍한 기만과 사기극을 밝혀내어 혼사를 엎어버려도 그만이었다. 그것이 국법에도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 품에 안겨, 발각될까 봐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속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제 뜨거운 손길을 피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온몸을 내어주는 이 여인의 가련한 숨결이 이 생의 가슴을 기묘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울렸다. 오만하고 이기적인 양반집 계집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보다, 차라리 평생 고통 속에 살면서도 이토록 처연하고 맑은 체향을 내뿜는 이 몸종을 안는 것이 백번, 천 번 낫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 네 멍청한 주인이 스스로 제 복을 걷어찬 운명이니, 내 오늘 밤 이 순결하고 가엾은 꽃을 온전히 내 진짜 아내로 취하리라.'
이 생은 월향의 정체를 모른 척하며, 오히려 그녀의 굳은살 박인 거친 손가락 마디마디에 진득하고도 애틋하게 입을 맞추었다.
"부인의 손길이 참으로 따스하고 가엾게 느껴지오. 내 평생 당신의 이 손을 잡고, 당신을 내 유일한 정인으로 아끼고 품어 주리다."
월향은 자신의 못나고 거친 손을 어루만져주며 입 맞추는 사내의 다정한 속삭임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이 천한 몸종이라는 사실이 당장이라도 들킬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자신의 가장 흉한 부분조차 아껴주는 이 완벽한 사내에게 온전히 빠져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마침내 어둠 속, 두 남녀의 헐벗은 몸이 하나로 단단하게 엮이는 순간, 월향의 얇은 허리가 활처럼 높이 휘어지며 찢어지는 듯한 짧은 교성을 짐승처럼 내뱉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찔한 고통과 폭발하는 듯한 환희가 전신을 벼락처럼 관통했다. 이 생은 그녀가 그 낯선 아픔에 오롯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다정하게 이마와 눈물 젖은 눈가에 연거푸 입을 맞추며, 짐승처럼 억눌린 달뜬 숨을 토해냈다.
밤이 깊어갈수록, 두 사람의 뜨겁게 엉킨 육체는 멈출 줄 모르고 거칠게 요동쳤다. 삐걱거리는 방바닥의 둔탁한 마찰음과 살과 살이 맞닿는 질척한 소리, 그리고 서로의 숨결을 깊게 탐하는 두 사람의 짐승 같은 소리가 신방을 가득 채웠다. 월향은 제 위에서 맹렬하게 허릿짓을 하는 사내의 땀에 젖은 넓은 어깨를 꽉 끌어안고, 그의 단단한 등에 자신의 손톱자국을 깊게 남기며 절정에 다다랐다.
'내일 아침이 밝아오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꿈이라 해도, 내 목이 잘려 나간다 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이 완벽한 사내의 온전한 신부다.'
그렇게 이름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조차 선명히 보지 못한 두 남녀는, 가장 원초적이고 맹렬한 육체의 언약으로 서로의 영혼과 뼛속 깊은 곳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지독한 낙인을 새겨넣고 있었다.
※ 4: 밝아온 아침, 엇갈린 운명과 기만
어스름한 새벽안개가 얇은 창호지를 하얗게 적시며 신방 안으로 스며들 무렵, 밤새 짐승처럼 맹렬하게 얽혀있던 두 사람의 뜨거웠던 숨소리도 서서히 고른 호흡으로 잦아들었다. 월향은 이 생의 넓고 단단한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나신을 빈틈없이 꽉 끌어안고 곤히 잠든 사내의 규칙적이고 따뜻한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를 다정하게 울렸다. 한평생 누군가의 체온을 이토록 따뜻하게, 그리고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느껴본 적이 없었다. 흉측한 괴물일 것이라 두려워하며 죽음을 각오했던 이 사내는, 간밤의 그 거칠고도 짐승 같은 정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그녀를 배려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산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방 안의 윤곽을 희미하게 드러내기 시작하자, 월향의 가슴속에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현실의 서늘함이 잔인하게 밀려들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그녀는 다시 천하디 천한 몸종으로 돌아가 궂은일을 해야 했고, 이 다정하고 완벽한 사내는 자신을 벌레 보듯 구박하고 매질하던 소희 아기씨의 고귀한 지아비가 될 터였다.
'이토록 눈물겹게 찬란하고 꿈같은 밤이 영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이 따뜻한 품 안에서 숨을 거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 어찌 이 사내를 아기씨의 곁에 두고 평생을 지켜보며 살아간단 말인가.'
월향은 입술을 꽉 깨물어 터져 나오는 비참한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생이 깰세라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비단 이불을 빠져나와, 차가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자신의 낡은 무명옷을 서둘러 주워 입었다. 방 한구석에 널브러진 화려한 붉은 활옷과 무거운 족두리를 가지런히 개어놓는 그녀의 굳은살 박인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마지막으로 깊이 잠든 이 생의 커다란 실루엣을 눈물 어린 시선으로 뼈에 새기듯 깊게 눈에 담은 뒤, 월향은 도망치듯 소리 없이 신방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차가운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마루 밖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소희가 초조하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서성이고 있었다. 소희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오는 월향을 보자마자 다급히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어 어두운 구석으로 짐승처럼 질질 끌고 갔다.
"어찌 되었느냐! 놈이 네년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겠지? 그 흉측한 괴물 놈이 해코지를 하거나 널 죽이려 들지는 않았더냐!"
"예… 아기씨.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 제 얼굴을 보지 못하였고, 저는 명하신 대로 밤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사옵니다. 안심하시옵소서."
월향의 목소리는 지독했던 정사의 여파로 잘게 쉬어 갈라져 있었고, 거친 무명옷 사이로 드러난 하얀 목덜미에는 붉은 매화꽃 잎 같은 정사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것을 본 소희는 몹시 불쾌하고 기분 나쁘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혀를 끌쯧 찼다.
"흥, 천박한 것. 괴물 놈의 그 더러운 욕정을 밤새 받아내느라 꼴이 아주 말이 아니구나. 역겹기 짝이 없다. 허나 수고했다. 내 약속대로 며칠 뒤 널 조용히 면천시켜 이 집에서 내보내 줄 터이니, 당장 우물가로 가서 몸을 씻고 입을 죽은 듯이 꾹 다물고 있거라! 행여나 혀를 잘못 놀리면 그날로 네년의 목이 달아날 줄 알아라!"
소희는 월향을 매몰차게 바닥으로 밀어내고는 옷매무새를 급히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마치 간밤에 자신이 첫날밤을 치른 진짜 순결한 신부인 양, 도도하고 요염한 자태를 꾸며내며 신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여전히 짙은 사내의 땀 냄새와 정사의 끈적하고 후끈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소희는 코를 막으며 월향이 곱게 개어둔 활옷을 대충 겉에 걸쳐 입고는, 이불 속으로 쏙 기어들어 가 이 생의 등 뒤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밝은 아침 햇살이 창문을 환하게 밝히며 방 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자 이 생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 생이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켜자, 등 뒤에서 자는 척하고 있던 소희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한껏 꾸며낸 교태로운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서방님. 밤새 평안하셨사옵니까. 간밤에 소녀를 어찌나 옥여주시던지, 몹시 부끄러웠사옵니다."
이 생은 고개를 돌려 비단 이불을 감싸 안고 있는 소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이 생의 얼굴을 마주한 소희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며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소문 속의 흉측한 괴물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에는 조각처럼 완벽하고 수려한 이목구비를 지닌, 장안의 그 어떤 사내보다 눈부시게 잘생긴 미남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흠잡을 데 없이 곧게 뻗은 콧날, 날카로우면서도 깊은 지성을 품은 눈매, 사내다운 단단한 턱선까지. 소희는 심장이 멎을 듯한 엄청난 충격과 동시에, 이토록 완벽하고 훌륭한 사내를 끔찍한 괴물로 오해하여, 저 천하고 냄새나는 몸종에게 첫날밤을 고스란히 넘겨주었다는 사실에 미칠 듯한 후회와 분노가 화산처럼 치밀어 올랐다.
'이, 이럴 수가! 어찌 저리도 눈부신 미장부란 말인가! 괴물이라는 그 끔찍한 소문은 대체 어떤 미친놈이 퍼뜨린 것이란 말이냐! 아아, 원통하고 분하다. 내 저 완벽한 사내의 첫 품을, 저 단단한 몸을 그 천한 년에게 내어주다니!'
소희가 뼈를 깎는 후회로 속을 끓이며 황급히 교태를 부리려 몸을 바짝 다가가는 순간, 이 생의 차갑고 예리한 눈빛이 소희의 전신을 뱀처럼 서늘하게 훑어 내렸다. 이 생은 속으로 차가운 코웃음을 쳤다. 간밤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품에 안겨 파들파들 떨며 소리 없는 눈물을 훔치던 그 처연하고도 사랑스러운 여인과는 공기부터가, 풍기는 체향부터가 완벽하게 달랐다.
"부인. 간밤의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오. 이리 가까이 와 보시오."
이 생은 짐짓 부드러운 목소리를 꾸며내며 소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소희는 얼굴을 붉히며 기꺼이 손을 내어주었으나, 이 생의 예민한 손끝에 닿은 그녀의 손은 차가운 물에 한 번 닿은 적 없는 듯 보드랍고 매끄러웠다. 간밤에 자신이 어둠 속에서 깍지를 끼고 수없이 입을 맞추었던, 거친 마디마디 굳은살이 흉하게 박여 있던 그 가엾은 손이 절대 아니었다. 이 생의 눈빛이 순간 한겨울의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부인의 손이 참으로 비단결같이 고우시오. 헌데 참으로 이상하구려. 어젯밤 깊은 어둠 속에서 내가 부인의 손을 애틋하게 잡았을 때는, 마디가 짐승처럼 굵고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 있어 참으로 내 가슴이 아팠거늘. 하룻밤 새에 이리 완벽하게 허물을 벗고 탈바꿈을 하다니, 우리 부인께서 도술이라도 부린 것이오?"
이 생의 송곳같이 예리한 질문에 소희의 얼굴이 핏기가 가시며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극도로 당황하여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더듬거렸다.
"그,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온지… 간밤에 너무 긴장하여 서방님께서 착각을 단단히 하신 모양이옵니다. 제 손은 날 때부터 이리 흉터 하나 없이 고왔사옵니다. 서방님도 참, 농도 짓궂으십니다."
소희의 얄팍하고 천박한 거짓말을 듣는 이 생의 눈가에 지독히도 서늘하고 잔혹한 살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간밤의 짐작이 흔들릴 수 없는 완벽한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거짓 소문 하나에 지레 겁을 먹고 제 몸종을 대신 사지로 밀어 넣은 비겁하고 오만한 양반집 계집. 이 생은 겉으로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소희의 손을 탁, 불쾌하다는 듯 놓아버리며 자리에서 꼿꼿하게 일어났다.
"그렇구려. 내가 아주 단단히 착각을 한 모양이오. 자, 어서 채비를 하시오. 장인어른께 새신랑으로서 아침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소. 아주 재미있는 아침이 될 것 같소이다."
이 생의 넓고 단단한 등 뒤로, 모든 끔찍한 진실을 들킬까 봐 두려워 사시나무처럼 덜덜 떠는 소희의 비참하고 일그러진 얼굴이 아침 햇살 아래 흉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 5: 드러난 진실, 가면을 벗은 신랑의 복수
아침 식사가 거하게 끝난 뒤, 최 참판 댁의 드넓은 사랑채 마당에는 일가친척들과 수십 명의 하인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 새신랑의 첫 아침 문안 인사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김 참판은 괴물이라는 소문과 달리 너무도 멀쩡하고, 오히려 장안 최고의 미남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수려하고 당당한 외모를 지닌 사위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내심 입이 귀에 걸리도록 찢어지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희 역시 어떻게든 간밤의 치명적인 실수를 무마하고 이 완벽한 사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기 위해, 평소보다 곱절은 화려하게 금은보화로 치장하고 다소곳이 이 생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사위가 이리도 늠름하고 훤칠한 장부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 세간에 떠돌던 그 흉흉한 소문은 우리 두 가문의 결합을 시기하는 자들이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헛소문이었던 모양이야.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고명딸과 백년해로를 약속하였으니, 앞으로 이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 내 뒤를 이어주게나. 허허허!"
김 참판이 껄껄 웃으며 흡족한 덕담을 건네자, 무릎을 꿇고 꼿꼿하게 앉아 있던 이 생이 갑자기 서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예리하고 차가운 눈빛이 마당을 한 번 쓱 쓸어내리자, 시끌벅적하던 잔치 분위기가 일순간 찬물을 깊게 끼얹은 듯 섬뜩하게 얼어붙었다.
"장인어른. 귀한 덕담은 뼈에 새기도록 감사하오나, 저는 오늘부로 이 혼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사옵니다. 아니,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이 혼사는 이미 어젯밤 파혼이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생의 폭탄 같은 선언에 사랑채 마당이 발칵 뒤집혔다. 하인들이 경악하여 입을 틀어막았고, 김 참판의 둥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이, 이게 무슨 해괴망측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소리인가! 성대하게 혼례를 올리고 첫날밤까지 치르고 나온 새신랑이 당일 아침에 혼사를 무르겠다니! 자네, 지금 우리 가문을 능멸하고 내 얼굴에 똥칠을 할 작정인가!"
"가문을 먼저 끔찍하게 능멸한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여기 계신 장인어른의 콧대 높은 귀한 따님이십니다."
이 생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사색이 되어 바닥에 주저앉은 소희를 매섭게 쏘아보며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저는 어릴 적 앓은 몹쓸 병으로 얼굴이 흉측해졌다는 악의적인 거짓 소문이 장안에 떠돌 때, 굳이 나서서 그것을 정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겉껍데기와 가문의 권세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얄팍하고 천박한 무리들을 걸러내기 위함이었지요. 헌데 장인어른의 고명딸께서는, 그 어리석은 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제 알량한 목숨과 고귀한 안위를 지키고자, 어젯밤 신방에 자신이 아닌 천한 몸종을 대신 들여보내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이 사대부 명문가의 여식이 할 짓이란 말입니까!"
"뭐, 뭐라? 대리 합방이라니! 그, 그게 정녕 사실이냐!"
김 참판이 경악하여 들고 있던 곰방대를 떨어뜨리며 소희를 바라보자, 소희는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며 억울하다는 듯 가짜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아, 아버님! 아닙니다! 저 자가 미쳐서 단단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젯밤 분명 신방에 있었고, 저 사내와 첫날밤을 치렀사옵니다! 서방님, 어찌 저같이 가냘픈 여인에게 이리 가혹하고 끔찍한 누명을 씌우십니까! 저는 맹세코 방 밖을 나선 적이 없사옵니다!"
소희가 흙바닥에 엎드려 발악하며 끝까지 변명하자, 이 생은 가증스럽다는 듯 턱을 치켜들며 차가운 조소를 터뜨렸다.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하며 죄를 뉘우치지 않다니, 참으로 역겹고 가증스럽소. 내 간밤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와 살을 섞고 숨을 나눈 여인의 거친 손을 뼛속 깊이 분명히 기억하오. 양반집 규수의 고운 손이 아니라, 거친 마디와 굳은살이 흉하게 박인, 평생 허드렛일에 시달린 고단한 여인의 손이었소. 또한, 내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여인이 낯선 고통을 참아내느라 내 오른쪽 어깨 죽지에 깊은 손톱자국을 여러 개 남겼거늘! 어디 지금 내 앞에서 그 고운 두 손을 들어, 당신의 손톱 밑에 내 피와 살점이 묻어 있는지 온 천하에 증명해 보시오!"
이 생이 입고 있던 푸른 도포의 옷고름을 거칠게 풀어헤치고 겉옷을 걷어 내려 오른쪽 어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자, 사내의 단단한 근육 위로 세 줄기의 붉고 깊은 손톱자국이 피를 맺은 채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완벽한 육체의 증거였다. 소희는 그 압도적인 증거 앞에서 더 이상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짐승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모든 기만과 진실이 아침 햇살 아래 명백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마당에 모인 하인들과 친척들은 대리 합방이라는 끔찍한 대역죄를 저지른 소희를 향해 경멸과 조롱 섞인 웅성거림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 이런 몹쓸 년! 감히 내 딸년이 천하디 천한 종년을 양반의 신방에 밀어 넣어? 네년이 기어이 우리 가문을 먹칠하고 내 얼굴에 똥물을 튀겼구나!"
김 참판은 극도의 분노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뒷목을 잡으며 쓰러졌고, 이 생은 여전히 차갑게 식은 눈으로 마당 한구석에 꿇어앉아 덜덜 떨고 있는 수십 명의 계집종들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어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내 품에 안겨 첫날밤을 치른 진짜 내 부인을 찾겠소. 이곳에 있는 몸종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내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내밀어 보아라!"
씬6
이 생의 서슬 퍼런, 그러나 위엄 있는 명령에 마당 구석에 엎드려 있던 노비들이 하나둘 덜덜 떨며 앞으로 나와 자신들의 거친 손을 내밀었다. 이 생은 한 치의 망설임이나 불쾌한 기색 없이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눈을 감았다. 간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심장을 쥐고 흔들었던 그 처연하고도 따뜻했던 촉감을 떠올리며 진중하게 손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구석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몰라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월향의 앞에 멈춰 섰다.
월향은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파들파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굳은살 박인 두 손을 조심스럽게 허공으로 내밀었다. 이 생이 그 거칠고 투박한 손을 자신의 크고 단단한 손으로 따뜻하게, 그리고 틈 없이 감싸 쥐는 순간, 차갑게 굳어 있던 이 생의 입가에 비로소 깊고 다정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가 번졌다.
"찾았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내 못난 흉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온전히 품어주었던 내 진짜 신부."
이 생은 모두가 경악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천한 몸종 월향의 거칠고 상처투성이인 손등에 아주 경건하고도 애틋하게 입을 맞추었다.
"아, 안 됩니다! 서방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몹쓸 짓을 저질렀사옵니다! 제발 저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제가 서방님을 평생 하늘처럼 모시고 섬길 터이니, 제발 그 더럽고 천한 종년에게서 손을 떼시옵소서!"
모든 것을 잃게 생겼음을 깨달은 소희가 흙바닥을 기어와 이 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처절하고 비참하게 매달렸지만, 이 생은 더러운 오물이라도 닿은 듯 매몰차게 그녀를 발로 차내었다.
"닥치시오. 당신의 그 알량한 허영심과 비겁함이 당신 스스로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걷어찬 것이오. 나는 오직 어둠 속에서 나와 피 끓는 살을 섞고 운명의 언약을 맺은 이 여인만을 내 평생의 정인으로 거둘 것이오. 더 이상 내 앞을 막지 마시오."
이 생은 눈물범벅이 되어 멍하니 서 있는 월향의 손을 굳게 쥐고 그녀를 단숨에 일으켜 세웠다. 김 참판의 집안은 대리 합방이라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뒤집어쓴 채 온 장안의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었고, 콧대 높던 소희는 비겁한 질투와 탐욕의 대가로 평생 수절하며 손가락질받는 비참하고 외로운 운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생은 그 길로 곧바로 월향의 늙고 병든 어미를 거두고, 김 참판의 얼굴에 던지듯 두둑한 재물을 뿌려 월향의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그녀를 완벽하게 면천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권세 높은 본가로 월향을 당당히 데려와, 장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눈부신 혼례를 다시 성대하게 치러주며 그녀를 정식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시간이 흘러 첫날밤의 끔찍했던 소동과 상처가 지나가고, 이 생의 본가에 새롭게 마련된 화려하고 포근한 진짜 신방.
방 안에는 수십 개의 촛불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은은한 매화 향기가 방 안을 기분 좋게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낡은 무명옷 대신 최고급 붉은 비단으로 지어진 원삼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월향은, 장안의 그 어떤 고귀한 양반집 규수보다도 기품 있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 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월향의 머리에 얹힌 무거운 족두리를 다정하게 벗겨내었다. 처음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닌, 환한 불빛 아래서 마주한 두 사람의 시선이 깊고 끈적하게 얽혀 들었다. 월향은 이 생의 그 수려하고 눈부신 얼굴을 올려다보며 벅찬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다.
"서방님… 저같이 미천하고 비루하게 살아온 여인을 이리 귀하고 따뜻하게 품어주시니, 제 목숨을 다 바쳐도 그 크나큰 은혜를 갚을 길이 없사옵니다."
"은혜라니요, 당치도 않소. 부인은 내게 목숨보다 귀한 나의 운명 그 자체요. 어둠 속에서 당신의 그 떨리는 처연한 숨결과 거친 손길이 내게 닿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사람의 진실된 온기와 사랑을 모른 채 차갑게 살아갔을 것이오. 나를 구원한 것은 바로 당신이오."
이 생은 다정하고 큰 손으로 월향의 뺨을 타고 흐르는 맑은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의 붉은 입술에 깊고 달콤하게 입을 맞추었다. 월향 역시 더 이상 신분 따위의 두려움에 떨지 않고, 온전한 여인이자 지어미로서 사내의 단단한 목에 두 팔을 감고 그 입맞춤에 열렬히 화답했다.
사르륵, 겹겹이 쌓여있던 붉은 원삼과 하얀 속저고리가 이 생의 부드럽고 다급한 손길에 의해 방바닥으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환한 촛불 아래 뽀얗게 드러난 월향의 눈부신 나신 위로, 이 생의 뜨겁고 맹렬한 입술이 닿을 때마다 월향은 억눌렀던 아찔하고 달콤한 교성을 토해냈다.
"부인, 이제는 억지로 숨소리를 죽이지 않아도 좋소. 내 넘치는 사랑을 온전히 받아내 주시오."
어둠과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소리를 죽여야만 했던 가짜 첫날밤의 그 처절하고 슬펐던 정사와는 달랐다. 온전한 부부로서, 서로의 체온과 눈빛을 온전히 마주하고 탐하는 그들의 몸짓은 거대한 바다처럼 깊고도 벅차오르게 충만했다. 월향의 눈부시게 흰 살갗 위로 이 생의 뜨거운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그녀의 거칠었던 두 손은 이제 사내의 넓은 등을 꽉 끌어안으며 날아오르는 듯한 환희의 순간을 맞이했다.
비겁한 자의 얄팍한 탐욕과 공포가 만들어낸 기만적인 밤은, 결국 껍데기를 넘어 진짜 운명적인 연인을 이어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도 눈부신 육체의 언약으로 찬란하게 완성되고 있었다. 서로의 영혼을 옭아맨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깊어가는 조선의 아름다운 봄밤을 붉게 물들였다.
유튜브 엔딩멘트
신랑이 흉측한 괴물이라는 소문에 제 몸종을 대신 신방으로 밀어 넣은 비겁하고 오만한 신부,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친 손을 통해 진짜 사랑을 알아본 완벽한 신랑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육체의 언약으로 시작되어 진짜 운명으로 역전된 몸종의 짜릿한 로맨스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이 더 재미있고 아찔한 조선의 야담을 만드는 큰 힘이 됩니다. 다음에도 잠 못 드는 밤을 책임질 흥미진진하고 달콤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