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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부의 소원을 들어준 머슴

    밤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과부의 부름에 응답하여 소원을 들어준 머슴의 이야기.

    본 대본은 조선시대 고전 해학 야담을 바탕으로, 시니어 시청자분들이 들으며 유쾌하게 웃고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재구성한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요청하신 대로 화자 표기(나레이션:, 이름: 등)를 일절 배제하고, 오직 서술형 나레이션과 “큰따옴표 대사”, ‘작은따옴표 속마음(독백)’만으로 성우들의 호흡과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집필하였습니다. 또한 각 씬은 최소 2,450자 이상의 풍성한 분량으로 스토리를 촘촘하게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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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로 (350자 내외):

    달 밝은 봄밤, 꽃잎은 하릴없이 지는데 아흔아홉 칸 넓은 기와집 안방에서 홀로 한숨을 내쉬는 스물여덟 꽃다운 청상과부가 있었습니다. 낮에는 정절을 지키는 엄격한 양반댁 마님 행세를 하지만, 밤만 되면 끓어오르는 독수공방의 외로움에 찬물만 들이켜던 그녀의 눈에 황소 같은 등판을 가진 머슴 돌쇠가 들어오게 됩니다. 체면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말은 못 하고 기상천외한 수수께끼로 유혹의 손짓을 던지는 마님과, 멍청한 척 능청을 떨며 마님의 숨겨진 소원을 화끈하게 풀어주는 돌쇠의 아슬아슬한 밤의 밀약! 과연 두 사람은 탐욕스러운 시숙의 음모를 물리치고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지금 시작합니다.

    ※ 1: 봄밤의 다듬이질과 황소 같은 머슴 돌쇠

    충청도 청주 고을에서도 가장 기와지붕이 높고 담장이 길기로 소문난 황 진사 댁 안채에는, 오늘 밤도 어김없이 청아하면서도 어딘가 애달픈 다듬이질 소리가 담장을 넘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또드락, 똑딱, 또드락, 똑딱. 보름달이 대낮처럼 환하게 중천에 떠올라 마당의 살구꽃 잎사귀를 하얗게 비추는데, 안방의 등잔불은 자정이 넘도록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방 안에서 홀로 박달나무 방망이를 두드리고 있는 여인은 이 집안의 젊은 안주인이자, 스물여덟 살의 꽃다운 나이에 홀로 된 청상과부 정 씨 마님이었습니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병약한 황 진사의 아들에게 시집와 변변한 첫날밤조차 치러보지 못한 채 삼 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그 뒤로 무려 칠 년이라는 세월을 차가운 빈방에서 홀로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살결은 백옥처럼 희고 눈매는 초승달처럼 고왔으며, 비단 저고리 아래로 드러난 가슴과 엉덩이는 한창 물이 오른 봄날의 복숭아처럼 탐스러웠건만, 그 고운 몸을 안아줄 사내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한이었습니다.

    방망이를 두드리던 정 씨 마님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비단 적삼 소매로 훔쳐냈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저 달님은 누구를 보려고 저리도 밝게 떠 있는고. 남들은 봄바람이 불면 서방님 품에 안겨 알콩달콩 정담을 나누건만, 나는 이 넓은 아흔아홉 칸 기와집에 갇혀 밤마다 차가운 다듬잇돌이나 두드리고 있으니, 이 끓어오르는 피와 외로움을 어찌 다스려야 한단 말인가.’

    정 씨 마님은 화끈거리는 두 뺨을 식히려 옆에 놓인 사기그릇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하지만 찬물이 목구멍을 넘어갈수록 가슴속에 타오르는 정화(情火)는 오히려 기름을 부은 듯 더 거세게 타오를 뿐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안방 창문을 살짝 밀어젖히자, 달빛이 쏟아지는 넓은 마당 한쪽에서 묵직한 도끼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퍽! 콰직! 퍽! 마님이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니, 행랑채 앞마당에서 이 집안의 상머슴인 서른 살 총각 돌쇠가 웃통을 시원하게 벗어젖힌 채 아름드리 참나무 장작을 패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돌쇠로 말할 것 같으면 부모 형제 없이 떠돌다 오 년 전 이 집에 들어온 머슴이었는데, 키가 구 척 장신에 어깨는 태산처럼 떡 벌어졌고, 구릿빛으로 그을린 가슴팍과 등줄기에는 꿈틀거리는 근육이 마치 성난 잉어처럼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그가 무거운 무쇠 도끼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가 내리찍을 때마다, 달빛 아래 번들거리는 땀방울이 탄탄한 등판과 허리춤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마님은 침을 꼴깍 삼키며 창틀을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습니다.

    ‘세상에, 저 돌쇠 녀석은 밤중에 웬 장작을 저리도 힘차게 패는 것인가. 어쩌면 사내의 몸뚱이가 저토록 바윗돌처럼 단단하고 우람할꼬. 죽은 우리 서방님은 바람만 불어도 기침을 콜록거리더니, 저 녀석은 도끼질을 백 번을 해도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는구나. 아아, 저 뜨거운 가슴팍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시린 몸을 기대어 볼 수만 있다면 내 당장 내일 아침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그때였습니다. 장작을 패던 돌쇠가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는지 문득 고개를 들어 안방 창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흠칫 놀란 정 씨 마님이 황급히 몸을 숨기려 했지만, 이미 돌쇠의 날카로우면서도 서글서글한 눈빛과 마님의 촉촉이 젖은 눈빛이 허공에서 정통으로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돌쇠는 당황하기는커녕, 목에 걸친 무명 수건으로 가슴팍의 땀을 쓱 훔치더니 마님을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꾸벅 인사를 올렸습니다.

    “마님,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습니까요? 소인이 밤중에 도끼질 소리로 마님의 단잠을 깨운 것은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요.”

    굵고도 나직한 돌쇠의 목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귓전을 간지럽히자, 정 씨 마님은 아랫배가 짜릿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애써 위엄 있는 목소리를 꾸며 대답했습니다.

    “아, 아니다. 날이 워낙 더워 잠이 오지 않던 참이었다. 그나저나 돌쇠 너는 낮에 논밭을 갈고도 힘이 남아돌아 이 야심한 밤에 장작을 패는 것이냐?”

    돌쇠는 도끼 자루를 짚고 서서 달빛 아래 구릿빛 가슴을 한 번 펴 보이더니,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헤헤, 마님도 아시다시피 소인이 워낙 타고난 기운이 장사인데다, 품어낼 곳 없는 혈기가 몸 구석구석에 꽉 차 있다 보니 이렇게 밤마다 몸을 굴려 땀을 빼지 않으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럽니다요. 장작 백 개쯤은 더 패야 이 뻐근한 허리와 팔다리가 좀 진정이 될 것 같습니다요.”

    ‘어머나, 저 녀석 말하는 것 좀 보게. 품어낼 곳 없는 혈기가 몸에 꽉 차서 잠이 안 온다고? 저건 꼭 내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하는 소리 같지 않은가.’

    마님은 심장이 방망이질치듯 쿵쾅거려 창문을 탁 닫고 방 안으로 주저앉았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달빛 아래 번들거리던 돌쇠의 구릿빛 가슴팍과 굵은 팔뚝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정 씨 마님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아랫마을에 사는 시숙, 즉 죽은 남편의 큰형인 황 진사가 이 안채의 재산과 마름 땅 백 마지기를 통째로 삼키려고 호시탐탐 마님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 진사는 동생이 죽자마자 제수씨인 정 씨 마님에게 ‘가문의 명예를 위해 평생 정절을 지키고 열녀문을 받아야 한다’며 바깥출입조차 엄격히 막았고, 심지어 마님이 일찍 병들어 죽기를 바라며 보약 한 첩 지어주지 않는 파렴치한 위인이었습니다.

    ‘흥, 시숙님은 내가 이 방구석에서 말라비틀어져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아직 서른도 안 된 새파란 나이에 이대로 늙어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내 체면도 구기지 않고, 저 듬직한 돌쇠의 품에 안겨 내 평생의 소원을 풀어볼 묘수가 없을까.’

    정 씨 마님은 비단 금침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밤새도록 꾀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양반댁 마님이 먼저 머슴에게 ‘나 좀 안아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돌쇠가 스스로 방 문턱을 넘어오게 만들 기막힌 시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2: 문풍지 구멍 너머의 수수께끼와 밤참의 유혹

    이튿날 밤이 되자,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달빛조차 은은하게 가려진 그야말로 은밀한 일을 도모하기에 딱 좋은 밤이 찾아왔습니다. 정 씨 마님은 낮부터 찬모를 시켜 기름진 암탉 백숙을 푹 고아 국물을 내고, 산수유와 복분자로 빚은 귀한 가양주 한 병을 안방 소반 위에 몰래 차려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찬모와 계집종들에게는 오늘 밤 몸이 편치 않아 일찍 자겠으니 내일 아침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절대 안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며 아랫방으로 멀찍이 물려 보냈습니다. 온 집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자, 마님은 목욕재계를 하고 살갗이 은은하게 비치는 얇은 명주 속적삼에 향긋한 동백기름을 살짝 바른 뒤, 방문을 반 치쯤 열어두고 마당을 향해 나직하게 돌쇠를 불렀습니다.

    “돌쇠야, 밖에 돌쇠 있느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행랑채 쪽에서 짚신 소리가 사뿐사뿐 들려오더니 돌쇠가 툇마루 아래에 공손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따라 돌쇠는 낮에 흘린 땀을 개울물에서 깨끗이 씻었는지, 사내의 뜨거운 체취와 시원한 물비누 향기가 바람을 타고 방 안까지 솔솔 풍겨왔습니다.

    “예, 마님! 부르셨습니까요? 이 밤중에 무슨 심부름이라도 있으신지요?”

    “심부름은 무슨… 낮에 네가 한 해 동안 농사일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마침 주방에 삶아둔 닭백숙과 술이 좀 남았구나. 버리기도 아깝고 하여 너를 불렀으니, 남들 눈도 있고 하니 툇마루에 서 있지 말고 어서 방 안으로 들어와 상을 물리거라.”

    돌쇠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허허, 우리 마님께서 드디어 나를 안방으로 불러들이시는구나. 밤마다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시던 그 애타는 눈빛을 내가 모를 줄 아셨나. 양반댁 마님이라 체면 때문에 빙빙 돌려 말씀하시니, 나도 못 이기는 척 장단을 맞춰드려야지.’

    돌쇠는 일부러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며 엉거주춤 방 안으로 들어와 아랫목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방 안은 마님의 따뜻한 체온과 동백기름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등잔불 아래 앉아 있는 정 씨 마님의 붉은 입술과 뽀얀 목덜미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습니다. 마님은 소반을 돌쇠 앞으로 밀어주며 직접 백옥 같은 손으로 술잔에 붉은 복분자주를 가득 따라주었습니다.

    “자, 어서 들거라. 네가 이 집안의 기둥인데 몸이 축나면 어찌하겠느냐. 술도 한 잔 마시고 고기도 든든히 먹어두거라.”

    “아이고, 마님! 소인 같은 천한 머슴에게 이리 귀한 술과 고기를 손수 따라주시니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돌쇠는 주는 술잔을 두 손으로 받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독하고도 달콤한 술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돌쇠의 눈빛이 한층 더 짙어졌습니다. 닭 한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술병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정 씨 마님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옷고름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돌쇠야, 내가 오늘 밤 너를 부른 것은… 네가 평소 눈치가 빠르고 총명하다기에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이다. 내가 요즘 밤마다 이상한 병이 들었는지, 가슴은 불덩이처럼 뜨겁고 아랫도리는 얼음장처럼 시려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의원에게 보약을 지어 먹어도 소용이 없으니, 이 병을 고치려면 대체 무슨 약을 써야 하겠느냐?”

    돌쇠는 마님의 얇은 명주 적삼 너머로 오르내리는 숨결을 바라보며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습니다.

    “마님, 소인이 무식하여 의술은 잘 모르오나, 옛말에 불이 난 데는 물을 부어야 하고, 얼음이 언 데는 뜨거운 인두로 녹여야 한다고 들었습니다요. 마님의 그 병은 약초로 고칠 병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뜨거운 양기(陽氣)로 다스려야 할 병인 줄 압니다요.”

    정 씨 마님은 돌쇠의 거침없는 대답에 귀밑까지 새빨개졌지만, 한 번 더 돌쇠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두 번째 수수께끼를 던졌습니다. 마님은 하얀 손가락을 들어 방 한구석의 문풍지에 뚫린 작은 구멍을 가리켰습니다.

    “네 말이 참으로 그럴듯하구나. 그런데 돌쇠야, 저기 창호지 문에 구멍이 하나 뚫려 찬바람이 자꾸 들어오는데, 내 손에는 풀도 없고 종이도 없으니 저 구멍을 무엇으로 막아야 바람이 안 들어오겠느냐?”

    돌쇠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굵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습니다.

    “마님, 종이와 풀이 없으면 어떻습니까요. 저 구멍에 딱 맞는 단단하고 뜨거운 살덩이로 꽉 틀어막으면 찬바람은커녕 방 안이 후끈후끈 달아올라 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것입니다요.”

    ‘아이고, 망측해라! 저 녀석이 내 속을 훤히 다 알고 놀리는구나.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다짐을 받아야지.’

    정 씨 마님은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아랫목에 깔린 폭신한 비단 이불을 매만지며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소리는 이미 봄바람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돌쇠야… 이 넓은 방에 이불은 두 채인데 덮고 잘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 이불 한 채가 늘 시렵게 비어 있구나. 오늘 밤은 천둥번개도 칠 것 같고 귀신이 나올까 무서운데, 네가 보기에 이 남은 이불 한 채는 어찌 쓰는 것이 가장 이롭겠느냐?”

    돌쇠는 빈 술잔을 소반 위에 탁 내려놓더니, 무릎걸음으로 마님의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습니다.

    “마님, 비싼 비단 이불을 두 채나 따로 덮으면 세탁하기만 번거롭지 않습니까요. 이불 한 채는 바닥에 두껍게 깔고, 나머지 한 채는 소인과 마님이 한데 포개어 덮으시면 귀신도 무서워 도망가고 마님의 그 지독한 불병과 냉병도 오늘 밤 안으로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요!”

    ※ 3: 소원을 들어준 뜨거운 밤과 은밀한 약조

    돌쇠의 대담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 씨 마님은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환희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손끝으로 머리맡의 호롱불 심지를 훅 불어 껐습니다. 방 안이 순식간에 아늑한 어둠에 잠기고, 창호지 너머로 어렴풋한 밤하늘의 푸른 빛만 스며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정 씨 마님이 모기 소리만 한 속삭임으로 돌쇠의 옷자락을 살짝 끌어당겼습니다.

    “이 녀석아… 마님 앞에서 감히 그런 발칙한 소리를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네 말이 정말로 사실인지, 내 병을 정말로 고칠 수 있는지… 당장 이리 와서 증명해 보이거라. 만약 거짓말이면 내일 아침에 볼기를 백 대는 때릴 것이다.”

    “헤헤, 마님! 소인이 볼기 백 대를 맞을지, 아니면 마님께 평생 상을 받을지는 지금부터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요!”

    돌쇠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 씨 마님의 가녀린 허리를 두 팔로 번쩍 감싸 안았습니다. 칠 년 동안 사내의 손길 한 번 닿지 않았던 마님의 부드러운 몸이 돌쇠의 화로처럼 뜨거운 가슴팍에 닿는 순간, 마님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나른하고도 달콤한 탄성이 새어 나왔습니다.

    “아아… 돌쇠야, 네 몸이 어찌 이리도 뜨겁단 말이냐. 마치 달궈진 무쇠 화로를 안고 있는 것만 같구나.”

    “마님 몸이야말로 봄눈처럼 부드럽고 향기롭습니다요. 소인이 마님을 사모하느라 지난 오 년 동안 밤마다 찬물을 뒤집어쓰며 참아온 한을 오늘 밤에 다 풀어드리겠습니다요.”

    돌쇠의 큼직하고 굳은살 박인 손이 마님의 비단 적삼 고름을 스르륵 풀고, 백옥 같은 어깨와 등줄기를 쓸어내렸습니다. 낮에는 엄격하기만 하던 양반댁 마님은 온데간데없고, 외로움에 굶주렸던 한 여인이 돌쇠의 넓은 품 안에서 한 마리 작은 새처럼 파르르 떨며 그의 목을 세차게 끌어안았습니다. 돌쇠가 마님의 입술과 목덜미에 뜨거운 입맞춤을 퍼붓자, 마님은 칠 년 동안 가슴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고드름이 단숨에 녹아내리는 듯한 아찔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화려한 모란 병풍 뒤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지고, 비단 금침이 사정없이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쇠는 낮에 아름드리 장작을 패던 그 무쇠 같은 허리 힘과 지칠 줄 모르는 정력으로 마님의 시린 몸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채워주었습니다. 마님은 행여나 바깥에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자신의 비단 적삼 자락을 입에 물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고, 돌쇠는 그런 마님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넘기며 밤이 새도록 온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자정이 지나고 삼경이 넘어 첫닭이 울기 직전까지, 안방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마침내 폭풍우 같았던 정사가 끝나고, 정 씨 마님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채 돌쇠의 떡 벌어진 가슴팍을 베개 삼아 누워 거친 숨을 골랐습니다. 칠 년 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가슴의 답답함과 손발의 냉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얼굴에는 스무 살 처녀 시절보다 더 고운 도화빛 혈색이 돌고 있었습니다. 마님은 돌쇠의 탄탄한 가슴을 손가락으로 살살 글씨 쓰듯 어루만지며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돌쇠야… 내가 평생 양반댁 규수로 자라며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어보았지만, 오늘 밤 네가 준 이 보약만큼 기막힌 약은 처음 먹어보는구나. 내 죽기 전에 이 맛을 알게 해 주었으니, 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다.”

    돌쇠는 마님의 뽀얀 어깨를 이불로 잘 덮어주며 듬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마님이라고 불리기보다, 이 밤만큼은 제 여인으로 모시고 싶었습니다요. 소인이 비록 천한 머슴의 신분이지만, 마님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만큼은 이 세상 어떤 양반 못지않습니다요.”

    마님은 돌쇠의 진심 어린 말에 코끝이 찡해져 그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습니다.

    “나도 안다. 죽은 남편보다, 내 재산만 노리는 시숙님보다 네가 백배 천배는 더 귀하고 믿음직한 사내라는 것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오늘 밤부터 너는 내 머슴이 아니라 내 서방님이다. 낮에는 남들 눈이 무서우니 예전처럼 마님과 머슴으로 지내되, 밤에 내가 창가에 호롱불을 두 번 깜빡이면 아무도 모르게 내 방으로 건너오너라. 알겠느냐?”

    “예, 마님! 아니, 내 고운 각시님! 하늘이 무너져도 그 약조만큼은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요.”

    두 사람은 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며 둘만의 비밀스러운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정 씨 마님의 안방에서는 서글픈 다듬이질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고, 대신 마님의 얼굴에는 날마다 봄꽃 같은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 4: 탐욕스러운 시숙의 음모와 열녀문 소동

    그렇게 마님과 돌쇠가 밤마다 달콤한 밀회를 즐기며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예전 같으면 창백한 얼굴로 방 안에만 틀어박혀 골골대던 정 씨 마님이, 요즘 들어서는 볼에 발그레한 홍조가 돌고 걸음걸이에 생기가 넘치며 피부에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자 동네 아낙들조차 신기해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마님은 돌쇠가 밤마다 힘을 쓰느라 기력이 달릴까 봐, 곳간 문을 활짝 열어 인삼과 녹용, 장어와 소고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며 “돌쇠가 집안일을 제일 많이 하니 잘 먹여야 한다”고 특식을 챙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으니, 바로 아랫마을에 사는 탐욕스러운 시숙 황 진사가 마님의 변화를 눈치챈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갓을 비스듬히 쓴 황 진사가 헛기침을 콜록거리며 안채 마루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는 전보다 십 년은 젊어 보이는 제수씨 정 씨의 고운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흠흠! 제수씨, 그동안 별고 없었는가? 그런데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군.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란 모름지기 슬픔에 잠겨 얼굴이 초췌해야 정상인데, 제수씨는 어찌 날이 갈수록 얼굴에 도화살이 피어나고 살결이 고와지는 것인가? 혹시라도 가문의 법도를 잊고 딴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겠지?”

    정 씨 마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습니다.

    “시숙님, 무슨 말씀을 그리 서운하게 하십니까. 소첩이 어찌 죽은 서방님을 잊겠습니까. 그저 요즘 날씨가 따뜻해져 입맛이 좀 돌아왔을 뿐입니다.”

    황 진사는 수염을 비비 꼬며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품속에서 서류 뭉치 하나를 꺼내 마루 위에 탁 내려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내가 오늘 기쁜 소식을 하나 가져왔네. 내가 한양의 예조 관원들에게 은자 오백 냥을 써서, 우리 가문에 ‘열녀문(烈女門)’을 내려달라고 상소를 올렸네! 조만간 관아에서 실사를 나올 터인데, 알다시피 살아 있는 과부가 열녀문을 받으려면 곡기를 끊고 남편을 따라 죽거나 평생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물과 나물만 먹으며 수절해야 하네. 그러니 오늘부터 안채 곳간 열쇠와 논 백 마지기 문서는 장손인 내가 모두 가져가 관리할 터이니, 제수씨는 방 안에서 정갈하게 굶으며 열녀가 될 준비나 하게나!”

    ‘뭐라고? 열녀문? 세상에, 이 늙은 여우 같은 시숙이 결국 내 재산을 통째로 빼앗으려고 나를 산 채로 굶겨 죽이려 드는구나!’

    마님이 하얗게 질려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마당을 쓸고 있던 돌쇠가 빗자루를 꽉 쥐며 부르르 떨었습니다. 황 진사는 마당의 돌쇠를 흘겨보며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저 돌쇠라는 놈 말일세! 과부만 사는 집에 저리 건장한 총각 머슴을 두는 것부터가 남들 입방아에 오르기 딱 좋단 말이야. 게다가 어제 행랑채 계집종에게 들으니, 밤마다 안방에서 도란도란 말소리와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군! 분명 밤마다 이 집 담장을 넘는 간부(姦夫)가 있거나 귀신이 붙은 게 틀림없어! 내가 오늘 밤 당장 영험한 박 도사를 데려와 안채 마당을 지키며 그 정체를 뿌리 뽑고야 말겠네!”

    황 진사가 큰소리를 치며 나가버리자, 정 씨 마님은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가 돌쇠의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돌쇠야, 아니 서방님! 이제 우리는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시숙님이 오늘 밤 박 도사라는 작자와 함께 마당에 잠복을 하겠다는데, 만약 우리 사이가 들통나기라도 하면 당신은 멍석말이를 당해 맞아 죽고 나는 강물에 수장당할 것이오!”

    돌쇠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마님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습니다.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욕심쟁이 황 진사 영감이 마님 재산을 탐내어 사기꾼 박 도사와 짜고 치는 수작인 줄 소인이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요. 그 박 도사라는 놈은 장터에서 과부들 등쳐먹기로 유명한 돌팔이입니다요. 오늘 밤 그 두 놈이 다시는 이 집 얼씬도 못 하게 소인이 아주 혼쭐을 내줄 터이니, 마님은 소인이 일러드리는 대로만 하십시오!”

    돌쇠가 마님의 귓가에 대고 오늘 밤에 펼칠 기막힌 작전을 속삭이자, 울고 있던 정 씨 마님의 얼굴에 금세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 5: 도깨비로 둔갑한 돌쇠의 통쾌한 몽둥이질

    그날 밤 자정 무렵, 달빛조차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황 진사와 애꾸눈 박 도사가 몽둥이와 부적을 들고 안채 후원 장독대 뒤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황 진사는 모기에 뜯기며 연신 투덜거렸습니다.

    “이봐, 박 도사! 정말 오늘 밤 제수씨 방에 외간 남자가 나타나는 게 맞는가? 그 현장을 덮쳐서 불륜으로 몰아야 내가 한 푼도 안 주고 땅 백 마지기를 다 차지할 텐데 말이야!”

    “헤헤, 진사 어르신, 염려 마십시오. 만약 사내가 안 나타나면 제가 미리 준비해 온 사내 고무신을 안방 툇마루에 슬쩍 놓아두고 간통죄로 덮어씌우면 그만입니다요!”

    두 악당이 키득거리며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안방 창문에 붉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정 씨 마님의 처량하고도 소름 끼치는 통곡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습니다.

    “아이고, 서방님! 죽은 내 서방님! 시숙님이 우리 재산을 다 빼앗고 나를 굶겨 죽여 열녀문을 받겠다고 합니다요! 서방님이 저승에서 노하셔서 오늘 밤 도깨비 장군을 보내어 시숙님의 간을 빼먹겠다고 하셨지요? 어서 오시옵소서!”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원 대나무 숲 쪽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 치는 듯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덩이 두 개가 허공을 날아다녔습니다. 황 진사와 박 도사가 기겁을 하여 고개를 돌려보니, 키가 열 척은 되어 보이는 시꺼먼 괴물이 뿔 달린 도깨비 탈을 쓰고 온몸에 숯검정을 칠한 채, 양손에 집채만 한 박달나무 몽둥이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장터에서 광대 탈을 구해 쓰고 대나무 죽마(竹馬)를 발에 묶어 키를 높인 돌쇠였습니다.

    돌쇠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소주에 횃불을 뿜어 허공에 시뻘건 불기둥을 토해내며, 동굴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이노오옴! 탐욕스러운 황 진사 놈과 사기꾼 박 도사 놈은 듣거라! 나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내려온 지옥의 상도깨비다! 네놈들이 감히 불쌍한 제수씨의 땅문서를 탐내고 거짓 열녀문을 꾸며? 오늘 밤 네놈들의 고약한 엉덩이뼈를 가루로 만들어 지옥 가마솥에 삶아 먹겠다!”

    “히이이익! 도, 도깨비다! 진짜 도깨비가 나타났다!”

    사기꾼 박 도사는 자기가 귀신을 부르러 왔으면서도 정작 불을 뿜는 거대한 도깨비가 나타나자 오줌을 지리며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돌쇠는 어둠 속에서 몽둥이를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도록 휘두르며 두 사람의 엉덩이와 등짝을 인정사정없이 내려쳤습니다. 퍽! 퍽! 찰싹!

    “아이고, 사람 살려! 도깨비 장군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멀어 동생 재산을 탐냈습니다! 아야야야!”

    “이놈! 네놈이 작년에 장터 주모와 바람을 피워 사생아를 낳고도 시치미를 뗀 죄! 소작인들 피땀 흘린 쌀을 고리대금으로 착취한 죄! 그리고 사기꾼 박 도사와 짜고 제수씨를 모함하려 한 죄! 이 자리에서 땅문서 포기 각서를 쓰지 않으면 당장 목을 비틀어 놓겠다!”

    돌쇠가 얼마나 매섭게 몽둥이질을 해댔는지, 황 진사와 박 도사는 마당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그만 후원 구석에 파놓은 깊은 똥거름 구덩이에 ‘풍덩!’ 하고 머리부터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구린내가 진동하는 똥물을 뒤집어쓴 황 진사는 코와 입에서 오물을 뿜어내며 두 손을 싹싹 빌었습니다.

    “푸하악! 켁켁! 살려주십시오, 도깨비 장군님! 제가 제수씨 재산에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내일 아침 당장 열녀문 상소도 취소하고 평생 안채 근처에는 얼씬도 않겠습니다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안방 창문 틈으로 이 꼴을 지켜보던 정 씨 마님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똥통에서 기어 나온 황 진사와 박 도사는 도깨비가 쫓아올까 봐 신발 한 짝도 잃어버린 채 엉금엉금 기어서 대문 밖으로 도망쳤고, 온 동네 개들이 똥 냄새를 맡고 짖어대며 두 사람의 엉덩이를 물어뜯는 통에 아랫마을까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 6: 가짜 장례식과 아내를 맞이한 새 인생

    황 진사를 통쾌하게 물리친 뒤, 안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황 진사는 그날 밤의 충격과 똥독으로 자리에 누워 끙끙 앓느라 감히 정 씨 마님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정 씨 마님과 돌쇠에게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경사이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밤, 돌쇠의 품에 안겨 있던 마님이 헛구역질을 우욱 하더니, 조심스럽게 돌쇠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아랫배 위에 얹는 것이었습니다.

    “서방님… 큰일 났소. 아무래도 내 뱃속에 당신의 귀한 씨앗이 자리를 잡은 것 같소. 달거리가 끊긴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단 말이오.”

    돌쇠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마님의 배에 귀를 대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마님! 아니, 여보! 그게 정말입니까요? 내 평생 천한 머슴으로 살다 죽을 줄 알았는데, 마님 같은 선녀의 몸에 내 자식이 생겼다니요!”

    “기쁘기는 나도 매한가지요. 하지만 서방님, 내가 과부의 몸으로 아이를 낳으면 이 고을에서는 당장 난리가 날 것이고, 우리 아이는 평생 아비 없는 사생아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오. 나는 이제 양반댁 마님이라는 이 지긋지긋한 껍데기가 싫소. 당신과 떳떳하게 부부로 살며 내 아이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고 싶단 말이오.”

    돌쇠는 밤새도록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더니, 무릎을 탁 치며 기막힌 묘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정 씨 마님과 돌쇠는 은밀하게 전답 백 마지기와 기와집을 타지 상인에게 비밀리에 처분하여 황금과 전표로 바꾸어 자루에 챙겼습니다. 그리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칠월 그믐밤, 안채의 낡은 행랑채 한구석에 불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돌쇠는 미리 구해둔 죽은 돼지 뼈에 마님의 비단옷과 가락지를 입혀 불길 속에 던져 넣은 뒤, 온 동네가 떠나가라 통곡하며 소리쳤습니다.

    “불이야! 불이야! 우리 마님께서 죽은 서방님을 그리워하시다가 불길 속에 몸을 던져 자결하셨습니다요! 아이고, 마님!”

    마을 사람들과 황 진사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불길이 건물을 집어삼킨 뒤였습니다. 황 진사는 불타버린 집터를 보며 겉으로는 우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제 유산은 내 차지다!’라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관아에 가서 땅문서를 확인해 보니, 정 씨 마님이 죽기 전에 이미 모든 재산을 팔아 보육원과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일부를 나눠주고 나머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게다가 충직하던 머슴 돌쇠마저 마님의 뒤를 따르겠다며 종적을 감추었으니, 황 진사는 빈 껍데기 집터만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시각, 청주에서 삼백 리나 떨어진 전라도 무주의 산수 좋은 고을에, 비단 도포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훤칠한 풍채의 박 서방과 복사꽃처럼 아름다운 부인이 마차를 타고 새로 지은 기와집으로 이사를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머슴 돌쇠는 이제 어엿한 대지주 ‘박 대감’이 되었고, 청상과부 정 씨 마님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편의 팔짱을 당당하게 끼고 다니는 ‘박 서방 댁 안주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새로 꾸민 넓고 따뜻한 안방에서 돌쇠는 이제는 남의 눈을 피해 숨어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정 씨 부인의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습니다.

    “여보, 이제 문풍지 구멍으로 바람 들어올 걱정도 없고, 호롱불 깜빡이는 신호를 기다릴 필요도 없구려. 내가 평생 당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낮이고 밤이고 당신이 원할 때마다 그 뜨거운 보약을 평생 달여 바치리다!”

    정 씨 부인은 남편의 듬직한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호호호, 서방님도 참! 밤에만 내 소원을 들어주던 머슴이, 이제는 내 평생의 소원을 다 이루어준 하늘 같은 서방님이 되었구려. 우리 이 고을에서 아들딸 오 남매는 낳고 백년해로하며 살아봅시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무주 고을에서 금슬 좋기로 소문난 잉꼬부부로 살며, 돌쇠를 똑 닮아 우람한 아들과 마님을 닮아 어여쁜 딸들을 줄줄이 낳고 백 살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유쾌한 이야기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300자 내외):

    오늘 준비한 조선시대 해학 야담, 〈과부의 소원을 들어준 머슴〉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허울뿐인 양반의 체면과 시댁의 탐욕을 통쾌하게 벗어던지고,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 떠난 마님과 돌쇠의 기지가 참으로 유쾌하고 속이 후련해지는 밤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 설정까지 꼭 부탁드립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따뜻한 감상평을 남겨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저희는 내일 밤에도 더욱 흥미진진하고 가슴 따뜻한 옛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오늘 밤도 평안하고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