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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산삼과 마름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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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영감마님, 이 산삼 드시고 제발 살아만 나셔유. 영감마님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목숨을 끊었을 목숨이구먼유." 예순의 나이에 병들어 죽어가던 내게, 젊은 시절 거두어주었던 심마니의 과부 분이가 전설 속의 천종산삼을 들고 찾아왔다. 검은 머리가 새로 나고 무너진 이빨이 다시 돋아나는 기적 같은 회춘. 내 재산을 노리던 흉악한 무리들을 단숨에 박살 내고, 나를 살려낸 여인을 품에 안은 통쾌하고도 뜨거운 회춘 로맨스.
※ 1: 강원도 인제의 겨울, 죽음의 그림자와 검은 속내
강원도 인제의 깊은 산골,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칼바람이 창호지를 찢을 듯이 몰아치는 깊은 겨울밤이었다.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내 너기와집은 겉보기엔 그럴싸했지만,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내 육신은 이미 썩어 들어가는 고목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콜록, 콜록! 으윽…."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탁한 기침을 토해낼 때마다, 뼈만 남은 흉곽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내 나이 올해로 예순. 젊은 시절에는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기골이 장대했고, 억척스럽게 산을 타고 화전을 일구어 인제 일대에서 남부럽지 않은 전답을 거느린 박 첨지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와 갑작스레 찾아온 이름 모를 병마 앞에서는 천하의 박 첨지도 속수무책이었다. 열흘 전부터는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해, 아랫목에 누운 채 시시각각 다가오는 저승사자의 발소리만을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내 슬하에는 일찍이 아내를 잃고 홀로 키운 아들 녀석 하나가 있었으나, 그마저도 몇 해 전 역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이 넓은 기와집에 남은 혈육이라곤 과부가 된 며느리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통하고 분한 것은, 내 목숨이 하루하루 사그라지는 이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내 곁을 지키며 눈물을 흘려주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내가 누워있는 이 안방의 문지방 너머에서는, 내 숨이 언제 끊어지나 초조하게 기다리며 내 평생의 피땀이 어린 재산을 가로채려는 짐승만도 못한 수군거림이 밤마다 뱀처럼 얽히고 있었다.
"콜록… 물… 물 좀 다오…."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바깥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찬 바람만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올 뿐 아무런 척도 없었다. 그때였다. 닫힌 방문 밖, 희미한 등불 그림자가 일렁이는 툇마루 쪽에서 두 사람의 은밀하고도 간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집안의 모든 농사와 소작을 관리하던 마름 황가놈, 그리고 내 아들의 처인 며느리의 목소리였다.
"마님, 제 말씀을 똑똑히 들으시지요. 첨지 어르신의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습니다. 의원도 길어야 사흘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습지요. 이대로 어르신께서 덜컥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촌수가 먼 친척 놈들이 득달같이 몰려와 종손의 권리를 운운하며 인제 일대의 알토란 같은 전답들을 모조리 빼앗아 갈 것입니다. 마님께선 빈손으로 쫓겨나 평생 수절하며 굶어 죽을 텝니까?"
황가의 목소리에는 탐욕의 기름기가 질득하게 배어 있었다. 그는 수십 년간 내 밑에서 굽신거리며 소작농들의 피고름을 짜내던 교활한 위인이었다. 그 간악한 혓바닥에 넘어간 며느리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아버님께서 아직 곳간 열쇠와 땅문서를 내어주시지 않았는데…."
"그래서 제가 오지 않았습니까요. 이제 곧 돌아가실 테니, 전답 문서를 미리 정리해두어야지요. 제게 안방의 문갑 열쇠를 넘겨주시면, 제가 은밀히 땅문서를 빼내어 마님과 제 이름으로 반반씩 명의를 돌려놓겠습니다. 친척 놈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관아에 뒷돈을 먹여 문서를 확정 지으면, 아무리 법도 운운해도 빼앗아 갈 재간이 없습니다. 어차피 썩어문드러질 노인네, 이 황가가 마지막 가는 길 시원하게 정리해 드리겠다 이 말입니다."
"하아… 알겠소. 아버님은 귀도 먹고 눈도 어두워지셨으니, 오늘 밤 내가 몰래 품속을 뒤져 열쇠를 빼내오리다."
방 안에서 그 끔찍한 모의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나는, 분노와 원통함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이런 천하의 몹쓸 것들! 내 살아생전 너희들에게 부족함 없이 입히고 먹였거늘, 아비가 다 죽어가는 안방 문지방 앞에서 내 살점을 뜯어먹을 궁리나 하고 있단 말이냐! 저 황가놈은 내가 길거리에서 얼어 죽어가던 것을 거두어 마름 자리까지 앉혀주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드는구나!'
분노로 온몸이 파르르 떨렸지만, 내 육신은 너무도 무기력했다.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 그 간악한 두 남녀의 멱살을 틀어쥐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뜨거운 분노의 눈물이 주름진 눈가를 타고 베갯잇을 적셨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내 평생의 일군 터전이 저 흉악한 것들의 아가리로 고스란히 들어갈 판이었다.
'누구든 좋으니… 내게 이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단 며칠만이라도 기력을 허락해 다오.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나를 이대로 비참하게 데려가지 마시옵소서….'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하지만 문밖에서는 이미 며느리가 내 품속을 뒤지기 위해 조심스럽게 문고리에 손을 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 생의 마지막 밤이 이토록 허망하고 참담하게 끝나는 것인가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계셔유? 첨지 어르신, 저 분이구먼유!"
거센 눈보라 소리를 뚫고, 대문 밖에서 다급하면서도 맑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황가와 며느리가 황급히 물러나는 기척이 났다. 분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흐려지던 내 의식 속으로 십수 년 전의 기억이 한 줄기 빛처럼 스쳐 지나갔다. 젊은 시절, 심마니로 평생 산을 타던 사내를 내 딸의 사위로 삼으려 곁에 둔 적이 있었다. 비록 사위의 연을 맺지는 못했으나, 그 심마니 사내가 호환(虎患)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을 때, 남겨진 그의 젊은 아내였던 분이가 빚쟁이들에게 팔려 갈 위기에 처한 것을 내가 사재를 털어 구해주었던 적이 있었다.
"어르신! 밖에서 죽더라도 어르신 얼굴 한 번 뵙고 죽을 참이어유. 문 좀 열어주셔유!"
사시나무 떨듯 애절하게 외치는 그 목소리는, 내 죽음의 문턱에서 울려 퍼진 한 줄기 구원의 종소리와도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신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을 쥐어짜 냈다.
"들… 들어오너라…."
※ 2: 큰 구렁이가 지키던 산삼, 그리고 분이의 백일 정성
삐걱거리는 대문 소리와 함께 누군가 안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코끝을 찌르는 시린 겨울바람과 함께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은, 머리와 어깨에 하얀 눈을 잔뜩 뒤집어쓴 채 숨을 헐떡이는 서른여덟의 과부, 분이였다. 낡은 무명 저고리는 곳곳이 해어지고 가시에 찢겨 핏자국이 배어 있었고, 얼어붙은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별처럼 맹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르신! 세상에… 어쩌다 옥체가 이 지경이 되셨대유!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잖아유!"
분이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내 차가운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그녀의 거칠고 얼음장 같은 두 손이 닿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뜨거운 온기가 내 식어가는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분이야… 네가 이 깊은 밤에, 눈보라를 뚫고 어찌 여길…."
"어르신, 제가 어르신 다 돌아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겄어유. 제 죽은 서방이 호랑이한테 물려가고 제가 청나라 노예로 팔려 갈 뻔했을 때, 빚을 다 갚아주시고 사람 구실 하며 살게 해주신 분이 어르신이잖아유! 그 은혜를 갚기 전엔 어르신 절대 못 돌아가셔유!"
그녀는 다급하게 등 뒤에 메고 온 낡은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여러 겹의 헝겊과 이끼로 정성스럽게 감싸인 무언가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것이 무엇이냐…?"
"보셔유. 제가 어르신 병환 소식을 듣고, 죽은 서방이 평생 타던 설악산 가장 깊은 골짜기를 석 달 열흘 동안 헤매고 다녔어유. 호랑이가 나온다는 골짜기에서, 사람 집채만 한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지키고 있던 바로 그 자리! 제 목숨을 내놓고 구렁이와 사흘 밤낮을 대치한 끝에 마침내 캐낸, 하늘이 내리신다는 천종산삼(天種山蔘)이구먼유!"
이끼를 걷어내자 방 안 가득 아주 깊고 짙은 흙내음과 함께 코끝을 찌르는 강렬한 단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팔뚝만 한 굵기에 수많은 잔뿌리가 뇌두 주변으로 신비롭게 뻗어 있는, 전설 속에서나 듣던 바로 그 천종산삼이었다. 뿌리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방 안의 차가운 공기가 후끈하게 데워지는 듯했다.
"세, 세상에… 네가 나를 위해 그 무서운 큰 구렁이가 지키는 사지로 직접 걸어 들어갔단 말이냐…."
"영감마님, 이 산삼 드시고 제발 살아만 나셔유. 영감마님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목숨을 끊었을 목숨이구먼유. 제가 직접 달여 올릴 테니, 아무 걱정 마셔유!"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안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며느리와 마름 황가가 그 광경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황가의 탁한 눈동자가 산삼을 향해 번뜩였다.
"아니, 이 과부 년이 미쳤나! 다 돌아가시는 어르신께 검증도 안 된 풀뿌리를 먹여 독살이라도 할 참이냐! 그 귀한 것은 내가 관아에 바칠 테니 당장 이리 내놓지 못할까!"
황가가 억지를 부리며 분이의 손에서 산삼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분이는 가녀린 몸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황가를 매섭게 밀쳐내고 산삼을 품에 꽉 안은 채 독기 어린 눈으로 소리쳤다.
"이 천하의 벼락 맞을 놈아! 어르신 눈이 아직 안 감기셨는데 어디서 마름 주제에 안방에 함부로 기어들어 와 행패냐! 내가 어르신 입에 이 산삼을 넣어드리기 전까지는 내 몸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못 내어준다!"
분이는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가마솥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마름 황가와 며느리가 부엌 문을 쾅쾅 두드리며 악을 썼지만, 분이는 귀를 닫은 채 오직 가마솥의 불씨만을 조절하며 기도를 올렸다.
그날 밤부터 분이의 지독하고도 눈물겨운 백일 정성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기와집 부엌 아궁이 곁에 볏짚을 깔고 기거하며, 오직 산삼을 달이는 일에만 매달렸다. 맑은 석간수만을 떠 와서, 가장 깨끗한 참나무 장작으로만 불을 지폈다. 산삼의 영험한 기운이 날아갈세라 불조절을 하느라 그녀의 얼굴은 시커먼 숯검정이 되었고, 두 손은 뜨거운 열기와 찬물에 번갈아 부르터 붉은 피가 맺혔다. 황가놈과 며느리가 매일같이 부엌 밖에서 온갖 모욕과 욕설을 퍼부었지만, 분이는 마치 바위처럼 묵묵히 버텨냈다.
그녀는 하루에 세 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득한 산삼 달인 물을 사기그릇에 담아 내 입가로 가져왔다.
"어르신, 뜨거우니 천천히 삼키셔유. 한 방울도 남기시면 안 돼유."
스푼으로 떠먹여 주는 산삼의 첫 모금을 넘기던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입술을 적시는 순간부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그 뜨겁고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진액은, 마치 식어버린 화로에 붉은 용암을 쏟아붓는 것과 같았다. 위장 깊은 곳에 닿은 산삼의 진액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시체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내 오장육부를 미친 듯이 뒤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핏줄이 확장되고 심장이 다시 거세게 박동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분이의 거친 손이 내 입가를 닦아줄 때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깊은 흙냄새와 땀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있던 내 노구(老軀)에, 산삼의 영험한 기운과 분이의 헌신적인 체온이 한데 뒤엉켜 아주 기이하고도 맹렬한 불꽃을 지피고 있었다. 백일의 기적이, 그렇게 눈보라 치는 인제의 산골짜기에서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시작되고 있었다.
※ 3: 솟구치는 양기와 검은 머리, 기적의 회춘(回春)
분이가 아궁이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산삼 진액을 달여 올린 지 어언 백일. 강원도 인제의 깊은 산골에도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녹고,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 연초록 새순이 움트는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자연의 섭리가 만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듯, 내 늙고 쇠약했던 육신에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거대한 기적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처음 산삼을 복용한 지 열흘째 되던 날, 내 가슴을 찢어놓듯 괴롭히던 지독한 기침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는 누군가의 부축 없이도 마루를 거뜬히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두 다리에 묵직한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백일째 아침에 찾아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려 물그릇을 들여다본 나는, 수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그만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 이게 정녕 내 모습이란 말이냐…!"
서리가 내린 듯 하얗게 세어 듬성듬성 빠져 있던 내 머리카락과 수염 자리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새까만 흑발이 빽빽하게 밀고 올라와 있었다. 깊게 파여 죽은 나무껍질 같았던 주름살은 탄력을 되찾아 팽팽해졌고, 핏기 없던 뺨에는 붉은 생기가 넘쳐흘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몇 해 전 썩어서 흔들거리다 빠져버렸던 잇몸 사이로 작고 단단한 새 이빨들이 마치 어린아이의 유치처럼 하얗게 돋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순한 병의 완치가 아니었다. 전설 속 천종산삼의 영험한 양기(陽氣)가 노인의 육신을 허물고, 이삼십 대 혈기 왕성한 장년의 몸으로 나를 완전히 새로 빚어낸, 말 그대로의 기적적인 회춘(回春)이었다.
단전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펄펄 끓는 용광로 같은 사내의 뜨거운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소용돌이쳤다.
"어르신! 아니, 이게 무슨 소란… 헉!"
우물가의 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뛰어나온 분이 역시, 물에 젖은 채 호랑이처럼 떡 벌어진 어깨와 구릿빛 가슴 근육을 드러내고 서 있는 나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순의 죽어가던 노인네는 온데간데없고, 기운이 펄펄 넘치는 사내가 그곳에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분이야… 네 정성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하늘의 조화가 아니라, 오직 네가 쏟은 백일의 피눈물이 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야."
나는 떨리는 그녀의 두 어깨를 단단한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내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악력에 분이의 가녀린 어깨가 움찔거렸다. 나는 숯검정이 묻은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죽어가는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이 여인에게, 이제는 단순한 고마움을 넘어 사내로서의 맹렬하고 애틋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싹트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뺨이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대문이 벌컥 열리며, 내가 관에 들어갈 치수나 잴 요량으로 줄자를 든 마름 황가와 며느리가 불쑥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님, 오늘쯤이면 영감탱이 숨이 멎었을 테니 빨리 초상을 치르고 땅문서 명의나 바꿉… 헉! 아, 아니! 너, 넌 누구냐!"
황가는 우물가에 서 있는 흑발의 건장한 사내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며느리 역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두 짐승만도 못한 것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내 눈빛에서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누구긴 누구냐! 네놈들이 내 숨이 끊어지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내 재산을 훔쳐먹으려 모의했던 인제골의 박 첨지다! 네놈들의 그 더러운 주둥이에서 내뱉던 모든 모의를 내가 방 안에서 똑똑히 듣고 있었다는 걸 잊었느냐!"
나의 사자후 같은 호통 소리가 기와집의 담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며느리는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고, 황가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비비며 덜덜 떨었다.
"어, 어르신…? 어찌 이런 일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옵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입 닥쳐라! 내 이놈들의 간악한 죗값을 낱낱이 치르게 해줄 것이니, 그동안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거라!"
나는 기절할 듯 바닥을 기는 두 사람을 차갑게 쏘아본 뒤, 분이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분이야, 너는 오늘부터 내 은인이 아니라 이 기와집의 진짜 안주인이다. 저 짐승 같은 것들 대신, 내가 남은 평생 내 모든 양기와 재산을 바쳐 너를 온전히 품고 지켜주마."
나의 거침없는 고백에 분이의 두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회춘한 육신의 끓어오르는 기운만큼이나, 분이를 향한 나의 굳은 결심은 그 무엇보다 뜨겁고 단단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 4: 작은마님 입성과 마름 황가의 독살 흉계
우물가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기적과 통쾌한 선언이 있은 직후, 나는 지체 없이 낡은 기와집의 안방을 새롭게 단장하고 분이를 내 정식 '작은마님'으로 맞아들였다. 강원도 인제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다 죽어가던 예순의 늙은이가 천종산삼을 먹고 머리가 검어지며 치아가 새로 났다는 회춘(回春)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며칠 지나지 않아 인제골을 넘어 강원도 일대 십 리 밖 저잣거리까지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나는 가장 먼저 분이가 걸치고 있던, 가시에 찢기고 피와 숯검정이 얼룩진 낡은 무명 저고리를 벗겨내었다. 그리고 한양 도성에서 제일간다는 비단 상단을 통째로 불러들여, 최고급 명주와 비단으로 그녀의 몸에 꼭 맞는 눈부신 옷을 지어 입혔다.
백일 동안 아궁이 앞에서 숯검정을 뒤집어쓰고 있던 얼굴을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동백기름을 발라 쪽을 찐 뒤 영롱한 옥비녀를 꽂은 분이의 자태는 도무지 서른여덟의 산골 과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혹적이고 기품이 넘쳐흘렀다. 그녀가 고운 연옥색 치마를 입고 내 곁에 나란히 서서 수줍고도 맑게 웃을 때면, 내 가슴속에서는 천종산삼이 깨워낸 사내의 뜨겁고 맹렬한 양기(陽氣)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안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이 기적 같은 회춘과 눈부신 사랑의 시작을 피눈물을 흘리며 저주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내 평생의 일군 재산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했던 마름 황가와 과부 며느리였다. 황가는 안방 문갑에서 땅문서를 몰래 훔쳐내어 관아에 명의를 넘기려던 자신의 완벽했던 계획이, 분이가 눈보라를 뚫고 들고 온 산삼 한 뿌리 때문에 처참하게 박살이 나버리자 매일 밤 독을 품고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만히 엎드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소! 영감탱이가 이십 대 장정의 기력을 되찾았으니, 조만간 내가 소작농들의 피고름을 짜내어 뒤로 빼돌린 쌀가마니와 과거 비리들을 모두 캐내어 날 관아에 고발할 것이 뻔하오. 그렇게 되면 마님 역시 땡전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내쫓겨 거지꼴을 면치 못할 것이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천한 과부 년과 영감탱이를 갈라놓고 문서를 내 손에 넣어야만 우리가 살 수 있소!"
어느 달빛조차 숨어버린 어두운 밤, 인적이 드문 헛간 뒤편의 후미진 사각지대에서 황가는 며느리를 은밀히 불러내어 뱀처럼 쉿쉿거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아버님의 눈빛이 호랑이보다 더 매서워지고 몸집마저 거대해지셔서, 나는 이제 무서워 눈도 못 마주치겠단 말이오!"
며느리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답하자, 황가의 탁하고 교활한 눈동자가 독사처럼 번뜩였다.
"내일 아침 동이 트자마자, 내가 인제 관아의 사또 나리를 찾아가 은밀하고도 중대한 고변을 할 것입니다. 저 분이라는 요망한 과부 년이 사실은 영험한 천종산삼을 캐온 것이 아니라, 심마니들과 결탁하여 맹독을 품은 독초인 천남성(天南星) 뿌리를 교묘하게 달여 영감탱이를 서서히 미치게 만들고 독살하려 한다고 말이오! 영감탱이가 머리가 검어지고 비정상적으로 기운이 넘치는 것은 회춘의 기적이 아니라, 지독한 독초에 중독되어 나타나는 마지막 단말마의 환각과 발악이라고 모함할 참이오."
"사, 사또께서 그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시겠소?"
"반드시 믿게 만들어야지요! 오늘 밤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내가 몰래 부엌에 들어가, 분이 년이 정성껏 쓰던 약탕기 밑바닥 아궁이 틈새에 진짜 천남성 맹독 가루를 담은 봉지를 숨겨두겠소. 날이 밝아 관아의 포졸들이 들이닥쳐 그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면, 분이 년은 변명 한마디 못하고 당장 하옥되어 목이 달아날 것이고, 그 끔찍한 충격에 영감탱이는 기력을 잃고 다시 쓰러질 것이오. 그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우리가 문갑의 자물쇠를 부수고 문서를 모조리 차지하면 끝이오!"
그들의 그 간악하고 소름 끼치는 음모는 밤의 어둠 속에 완벽하게 숨겨진 듯했다. 황가는 자신의 잔혹한 계획에 스스로 도취되어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황가의 거짓 고변을 받은 인제 관아의 사또가 험상궂은 포졸들을 대거 이끌고 기와집 마당으로 요란하게 들이닥쳤다.
"이리 오너라! 당장 저 부엌에 있는 요망한 과부 년을 포박하여 마당에 꿇어앉혀라!"
사또의 벼락같은 호령에 몽둥이를 든 포졸들이 우르르 달려가, 밥상을 준비하던 분이의 팔을 거칠게 꺾어 마당 흙바닥에 무자비하게 무릎을 꿇렸다. 영문도 모른 채 포박당한 분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덜덜 떨며 안방 쪽을 바라보았고, 방문을 열고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분노로 목에 핏대가 선 채 마당으로 성큼성큼 뛰어 나갔다.
"사또! 이게 대체 무슨 무례하고 망발스러운 행패요! 죄 없는 내 부인에게 당장 무슨 짓이오!"
내가 포졸들을 밀쳐내며 호통을 치자, 사또 곁에 뱀처럼 굽실거리며 서 있던 황가가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어르신, 더 이상 저 요부의 거짓에 속지 마십시오! 저 년이 어르신께 백일 동안 먹인 것은 귀한 산삼이 아니라, 어르신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고 심마니들과 짜고 달인 맹독입니다요! 제가 어젯밤 부엌에서 저 년이 탕약에 짐독을 섞어 넣는 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어르신이 헛것을 보시고 몸이 회춘했다 굳게 믿으시는 건, 필시 저 지독한 독초에 중독되어 혈기가 거꾸로 솟구친 탓입니다요! 자, 포졸들아, 당장 부엌의 약탕기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아라!"
포졸들이 우르르 부엌으로 달려가 약탕기를 뒤엎고 아궁이를 파헤치자, 황가가 전날 밤 몰래 쑤셔 박아 숨겨둔 검은 맹독 가루 봉지가 보란 듯이 툭 떨어져 나왔다.
"사또 나리! 이것 보십시오! 짐독이 분명합니다!"
포졸의 외침에 분이는 너무나 큰 억울함과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쏟아냈고, 뒤에 숨어 있던 며느리는 황가와 은밀히 시선을 교환하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황가의 얼굴에는 모든 것이 제 완벽한 흉계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오만한 확신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 등 뒤로 무섭게 뻗쳐오르는 거대한 사내의 분노와, 그들이 미처 알지 못한 진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승리에 도취된 황가와 사또를 향해 서늘하고도 묵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가야. 네놈의 그 알량하고 잔인한 꾀가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
※ 5: 숨겨둔 산삼 봉지와 전답 문서, 통쾌한 단죄
마당 한가운데에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고요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흘렀다.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며 쓰러지거나 절망에 빠질 줄 알았던 나의 뜻밖의 평온하고도 서늘한 미소에, 황가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사또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또. 저놈이 억지를 부리며 명백한 증거라며 내민 저 독 가루 봉지가, 진짜 내 부인이 은밀히 들여와 쓴 것인지 아니면 저 간악한 마름 놈이 나를 속이기 위해 밤새 조작한 것인지 내가 명명백백히 밝혀드리리다. 여봐라! 당장 안방 문갑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붉은 비단 상자를 이리로 가져오너라!"
나의 지시에 충직한 하인이 황급히 안방으로 달려가 놋쇠 자물쇠가 굳게 채워진 붉은 비단 상자를 두 손으로 받들어 들고나왔다. 마당의 모든 시선이 그 상자에 집중된 가운데, 내가 품속 깊은 곳에서 작은 쇳대를 꺼내어 찰칵 소리와 함께 자물쇠를 열어젖혔다.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마자 마당 가득 아주 짙고 강렬한 흙내음과 달콤한 약초의 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눈부신 자태를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분이가 눈보라를 뚫고 목숨을 걸어 캐왔던 천종산삼의 온전한 형체 중 정확히 절반이 고스란히 뇌두와 함께 보존된 '진짜 산삼 봉지'였다.
"사또! 똑똑히 눈을 크게 뜨고 보시지요. 이것이 바로 천 년의 맑은 기운을 품었다는 천종산삼의 진짜 윗뿌리요! 내 부인은 백일 내내 이 귀한 것의 아랫부분만을 정성껏 끓여 내게 올렸거늘, 어찌 독초라 모함한단 말이오! 분이가 내게 탕약을 올리던 첫날, 훗날 이 귀한 물건을 증명할 날이 올까 하여 내가 절반을 뚝 떼어 이 비단 상자 안에 굳게 보관해 두었던 것이오. 당장 관아의 의원을 불러 이 산삼의 진위를 감정해 보시오!"
사또의 뒤에 병풍처럼 서 있던 늙고 경험 많은 관노 의원이 황급히 다가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산삼의 냄새를 맡고 수많은 잔뿌리를 샅샅이 살피더니, 이내 경악하며 흙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사, 사또 나리! 이, 이것은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틀림없는 진짜 천종산삼이옵니다! 이토록 맹렬하고 영험한 양기를 뿜어내는 것은 소인 평생 의술을 행하면서도 처음 보옵니다! 부인이 올린 것은 독초가 아니라 하늘이 내린 영약이 맞사옵니다!"
그 순간, 승리를 확신했던 황가의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잿빛으로 질리며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며느리 역시 입을 틀어막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통쾌한 단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가야, 네놈이 어젯밤 자정 무렵 몰래 부엌에 기어 들어가 독 가루를 쑤셔 박던 그 시각, 내가 너의 거처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나는 비단 상자 맨 밑바닥 이끼 아래에 숨겨두었던 누런 종이뭉치를 꺼내어, 공포에 질린 황가의 면상에 사정없이 집어 던졌다. 펄럭이며 마당 흙바닥에 흩뿌려진 종이들은, 다름 아닌 그동안 황가가 소작농들의 고혈을 짜내어 몰래 수천 석의 쌀을 빼돌린 이중 장부들과, 내 안방에서 땅문서를 훔치기도 전에 이미 인제 전답을 가로채기 위해 며느리와 공모하여 관아의 도장까지 위조해 둔 가짜 땅문서들이었다.
"사또! 똑똑히 보십시오! 저 간악한 마름 놈이 내 며느리와 짜고, 다 죽어가던 내 안방 문밖에서 내 평생의 피땀이 어린 재산을 가로채려 모의한 끔찍한 위조 문서들입니다. 제 뜻대로 문서가 넘어오지 않자, 이젠 죄 없는 내 부인을 독살범으로 몰아붙여 관아의 손을 빌려 죽이려 한 흉악무도한 자이오니, 당장 저놈을 포박하여 엄벌에 처해주시지요!"
명백한 물증과 거짓을 꿰뚫은 나의 서슬 퍼런 분노 앞에서, 상황은 순식간에 완전히 역전되었다. 사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런 천하의 쳐죽일 놈을 보았나! 감히 주인의 은혜를 원수로 갚고, 모자라 신성한 관아와 본관까지 기만하려 들다니! 여봐라, 당장 저 흉악한 황가놈과 그에 동조한 패륜 며느리를 포박하여 당장 하옥하라! 오늘 밤 날이 새도록 곤장을 쳐서 그 썩어빠진 뼈를 부러뜨릴 것이다!"
"어, 어르신! 사또 나리! 살려주십시오! 제,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제발 목숨만은…!"
황가와 며느리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바닥에 이마가 깨지도록 머리를 찧었지만, 분노한 포졸들은 그들의 상투와 머리채를 휘어잡고 무자비하게 끌어내어 오라줄로 꽁꽁 묶었다. 십수 년간 내 피를 빨아먹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려 했던 흉악한 무리들이, 내 손에 의해 완벽하고도 통쾌하게 박살이 나는 순간이었다. 마당 밖으로 비참하게 끌려가는 그들의 짐승 같은 비명 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분이에게 다가갔다.
"분이야, 많이 무서웠느냐. 미안하구나. 진작에 쳐냈어야 할 것들을 방치하여 네게 이런 수모를 겪게 했어. 이제 모든 악귀들이 이 집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니, 내 너의 맑은 눈에 다시는 눈물 날 일 없게 평생을 지켜주마."
나는 그녀의 팔을 잡고 거칠면서도 따뜻하게 번쩍 안아 올렸다. 내 단단한 가슴에 안긴 분이는 그제야 참았던 안도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토록 무겁고 지독했던 음모의 짙은 그림자가 완전히 걷히고 난 기와집의 하늘 위로, 유난히 맑고 눈부신 봄 햇살이 우리 두 사람의 어깨를 아주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 6: 이 산이 가장 좋구나, 절제되고 뜨거운 합궁의 밤
모든 흉악한 무리들을 관아의 감옥으로 넘겨 철저히 단죄하고, 집안의 어지러운 대소사를 말끔히 평정한 후, 드디어 우리 두 사람의 정식 합궁일(合宮日)이 다가왔다.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인제의 늙은 한의원을 은밀히 안방으로 불러 내 몸의 기혈 상태를 진맥하게 했을 때, 의원은 눈을 감고 맥을 짚어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첨지 어르신! 대체 천종산삼의 그 맹렬한 약효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예순의 옥체가 삼십 대 젊은 장정보다 더 펄펄 끓어오른단 말씀입니까! 대감의 맥상이 마치 비가 쏟아지는 날의 거친 폭포수처럼 무섭게 고동치고 있사옵니다. 허나, 명심하셔야 합니다. 기력이 이토록 기적처럼 완전히 회복되었다 하여, 젊은 시절의 호기만을 믿고 짐승처럼 밤마다 욕심을 부리시면 모처럼 단전에 쌓인 진기(眞氣)가 한순간에 흩어질 수 있습니다. 젊은 부인과의 잠자리는 한 달에 딱 세 번! 오직 세 번만 절제 있게 치르시면, 흩어진 양기가 갈무리되어 백 살까지 무병장수하실 겄입니다."
'한 달에 세 번이라….' 나는 의원의 뼈 있는 단단한 당부를 가슴 깊이 새기며, 설레고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새롭게 단장한 안방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은은한 난초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화려하고 부드러운 붉은 원앙금이 깔린 푹신한 이부자리 위에는 분이가 눈부시게 하얀 속적삼만을 입은 채,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일렁이는 촛불 아래 비친 그녀의 붉게 상기된 고운 뺨과, 얇은 명주 천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풍만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보는 순간, 천종산삼이 깨워낸 내 아랫배의 맹렬한 양기가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미친 듯이 훅 치솟아 올랐다.
"분이야… 아니, 부인. 내 평생 산천초목을 누비며 살았지만, 이토록 심장이 터질 듯 떨리고 벅찬 밤은 처음이오."
나는 거칠어진 호흡을 억누르며 천천히 그녀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둥근 어깨를 아주 다정하고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분이의 고개가 자연스레 내 넓고 구릿빛으로 빛나는 가슴에 기대어졌다.
"영감마님… 저, 산속에서 험하게 굴러먹은 천한 과부 년의 거칠고 상처투성이인 몸뚱어리라… 혹여 영감마님 귀하신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안 차시면 어쩌나 두려워유…."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그리 하오. 세상 천지 그 어떤 양반가 규수보다, 내 눈엔 당신이 가장 눈부시고 귀한 여인이오. 그 험한 구렁이가 도사린 갯바위에서 다 죽어가던 나를 살려낸 건 흙 묻은 산삼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그 고결한 정성이었소."
나는 분이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아쥐고, 백일 동안 아궁이 앞에서 산삼을 달이느라 곳곳에 벌건 화상 자국과 굳은살이 남은 그녀의 두 손을 조심스레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상처 난 손등 위에 눈을 감고 경건하게, 아주 오래도록 입을 맞추었다. 나의 다정하고 뜨거운 진심이 담긴 손길에, 잔뜩 긴장해 있던 분이의 몸이 서서히 봄눈 녹듯 스르르 풀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의원의 당부대로 내 안의 짐승 같은 기운을 다스리며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의 하얀 속적삼 옷고름을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풀어내자, 촛불 아래 눈부시도록 하얀 살결이 마침내 온전히 드러났다. 억세고 강인한 사내의 힘을 오직 부드러움으로 통제하며, 나는 그녀의 쇄골과 둥근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고 끈적하게 입술을 맞추어 내려갔다.
"아읏… 마님… 흐응…."
나의 숨결이 여린 살결에 닿을 때마다, 분이의 붉은 입술 사이로 작고 애타는 탄식이 달콤하게 새어 나왔다. 나는 그녀의 몸과 마음이 나를 향해 완벽하게 열리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며, 아주 천천히, 그리고 깊숙하게 그녀의 따뜻한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천종산삼이 뿜어내는 거친 열기와 그녀를 향한 맹렬한 사랑이 하나로 엉켜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방 안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밤이 얼마나 깊어갔는지 모를 무렵. 분이가 내 넓고 단단한 가슴에 땀에 젖은 머리를 기댄 채 달콤하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가슴 벅차오르는 환희를 안고 그녀의 촉촉한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하며, 아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내 평생 짐승처럼 수많은 험하고 높은 산을 타고 넘으며 심마니 흉내를 내며 살아왔건만… 분이야, 내 품에 안긴 당신이라는 이 산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훌륭하구나."
그 나의 농기 어린 고백에 분이는 얼굴을 붉히며 까르르 맑은 웃음을 터뜨렸고, 두 팔을 뻗어 내 굵은 허리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매서운 눈보라가 치고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던 그 끔찍했던 겨울밤에 찾아온 작은 기적. 나를 살려낸 이 아름답고 눈부신 여인과 함께하는, 더없이 완벽하고 뜨거운 회춘의 새 삶이 찬란한 봄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유산을 노린 며느리와 마름의 끔찍한 음모를 박살 내고, 자신을 살려낸 과부 분이와 함께 기적 같은 회춘 로맨스를 이룬 박 첨지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죽음의 문턱에서 진짜 은인을 만나 진정한 사랑과 젊음을 되찾은 두 사람의 통쾌하고도 애틋한 이야기가 여러분께 대리 만족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며, 다음 시간에도 더 쫄깃하고 짜릿한 조선 로맨스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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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컬러펜슬화, no text. 조선시대 기와집 방안, 백발에 건장한 사내(상투머리)가 고운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쪽진머리)을 품에 안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습. 따뜻하고 로맨틱한 분위기.
16:9, color pencil drawing, no text. Inside a tiled-roof house in the Joseon Dynasty, a sturdy man with black hair (sangtu) holding a beautiful woman in a fine Hanbok (jjeokjin meori) in his arms and looking at her lovingly. Warm and romantic atmosphere.
씬 1 이미지 (5장)
16:9, 수채화, no text. 깊은 겨울밤, 눈보라가 몰아치는 강원도 첩첩산중의 낡은 기와집 외관.
16:9, watercolor, no text. Deep winter night, exterior of an old tiled-roof house in the deep mountains of Gangwon-do with a snowstorm raging.
16:9, 수채화, no text. 어두운 방 안, 이불을 덮고 기침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병든 노인(백발 상투머리).
16:9, watercolor, no text. Inside a dark room, a sick old man (white hair, sangtu) coughing and suffering under a blanket.
16:9, 수채화, no text. 문 밖 툇마루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속닥거리는 두 남녀의 실루엣.
16:9, watercolor, no text. Silhouettes of a man and a woman whispering with wicked smiles on the wooden porch outside the door.
16:9, 수채화, no text.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쥐고 있는 병든 노인의 클로즈업.
16:9, watercolor, no text. Close-up of the sick old man clenching his fists and crying tears of grievance.
16:9, 수채화, no text. 눈을 잔뜩 맞고 대문을 열고 다급하게 들어오는 낡은 옷차림의 여인.
16:9, watercolor, no text. A woman in worn clothes entering the gate urgently, covered in snow.
씬 2 이미지 (5장)
16:9, 수채화, no text. 방에 들어와 노인의 차가운 손을 부여잡고 안타까워하는 여인.
16:9, watercolor, no text. The woman entering the room, holding the old man's cold hand and looking pitiful.
16:9, 수채화, no text. 여인이 보자기를 풀자 드러나는 신비로운 잔뿌리가 가득한 커다란 천종산삼.
16:9, watercolor, no text. The woman untying a bundle to reveal a large, mysterious wild ginseng full of fine roots.
16:9, 수채화, no text. 험한 계곡 갯바위에서 큰 구렁이와 대치하며 산삼을 캐는 여인의 회상 장면.
16:9, watercolor, no text. Flashback scene of the woman digging for wild ginseng while confronting a large snake on a rugged valley rock.
16:9, 수채화, no text.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숯검정이 된 얼굴로 정성껏 약탕기를 끓이는 여인.
16:9, watercolor, no text. The woman carefully boiling the medicine pot with a soot-covered face while lighting a fire in the fireplace.
16:9, 수채화, no text. 김이 나는 산삼 달인 물을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노인에게 먹여주는 모습.
16:9, watercolor, no text. The woman carefully feeding steaming wild ginseng decoction to the old man with a spoon.
씬 3 이미지 (5장)
16:9, 수채화, no text. 마루를 지팡이 없이 힘차게 걸어 다니는 건강해진 노인의 뒷모습.
16:9, watercolor, no text. Back view of the healthy old man walking vigorously on the porch without a walking stick.
16:9, 수채화, no text. 우물가에서 물에 비친 흑발의 건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사내.
16:9, watercolor, no text. The man surprised to see his sturdy reflection with black hair in the water at the well.
16:9, 수채화, no text. 근육질의 구릿빛 상체를 드러낸 채 서 있는 회춘한 사내와 놀란 여인.
16:9, watercolor, no text. The rejuvenated man standing with his muscular, tanned upper body exposed, and the surprised woman.
16:9, 수채화, no text.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는 악당 남녀의 표정.
16:9, watercolor, no text. Expressions of the villainous man and woman stepping back in terror after opening the gate.
16:9, 수채화, no text. 겁에 질린 두 사람을 매섭게 호령하며 서슬 퍼렇게 노려보는 건장한 사내.
16:9, watercolor, no text. The sturdy man glaring fiercely and scolding the two terrified people.
씬 4 이미지 (5장)
16:9, 수채화, no text. 비단옷으로 곱게 단장하고 비녀를 꽂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쪽진머리).
16:9, watercolor, no text. Dazzlingly beautiful woman (jjeokjin meori) finely dressed in silk clothes and wearing a hairpin.
16:9, 수채화, no text. 어두운 헛간 뒤에서 음흉한 표정으로 흉계를 꾸미는 악당 남녀.
16:9, watercolor, no text. Villainous man and woman plotting with sinister expressions behind a dark barn.
16:9, 수채화, no text. 한밤중 몰래 부엌에 숨어들어 약탕기 밑에 수상한 검은 가루를 숨기는 남자.
16:9, watercolor, no text. Man sneaking into the kitchen in the middle of the night and hiding suspicious black powder under the medicine pot.
16:9, 수채화, no text. 마당에 들이닥친 사또와 포졸들에게 거칠게 꿇어앉혀진 억울한 표정의 여인.
16:9, watercolor, no text. Woman with an unfair expression forced to kneel roughly by the magistrate and guards who rushed into the yard.
16:9, 수채화, no text. 분노로 핏대가 선 채 악당들을 향해 걸어 나오는 당당한 사내의 모습.
16:9, watercolor, no text. The imposing man walking towards the villains with veins standing out in anger.
씬 5 이미지 (5장)
16:9, 수채화, no text. 하인이 가져온 붉은 비단 상자를 열어 진짜 천종산삼 절반을 보여주는 사내.
16:9, watercolor, no text. The man opening a red silk box brought by a servant and showing half of the real wild ginseng.
16:9, 수채화, no text. 산삼을 확인하고 경악하여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의원과 굳어버린 사또.
16:9, watercolor, no text. The physician prostrating in shock after checking the ginseng, and the frozen magistrate.
16:9, 수채화, no text. 악당의 얼굴에 누렇게 바랜 가짜 땅문서 뭉치를 거칠게 집어 던지는 사내.
16:9, watercolor, no text. The man roughly throwing a wad of yellowed fake land documents at the villain's face.
16:9, 수채화, no text. 포졸들에게 포박되어 절망하며 울부짖으며 끌려나가는 악당 남녀.
16:9, watercolor, no text. The villainous man and woman being dragged away, crying in despair, tied up by guards.
16:9, 수채화, no text. 흙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을 다정하고 번쩍 안아 올리는 사내의 따뜻한 모습.
16:9, watercolor, no text. The warm scene of the man gently lifting the woman sitting on the dirt floor.
씬 6 이미지 (5장)
16:9, 수채화, no text. 붉은 원앙금이 깔린 화려한 방, 하얀 속적삼 차림으로 고개 숙인 여인.
16:9, watercolor, no text. A luxurious room with a red blanket, the woman with her head bowed wearing a white inner garment.
16:9, 수채화, no text. 화상 자국이 남은 여인의 거친 손등에 부드럽고 다정하게 입 맞추는 사내.
16:9, watercolor, no text. The man kissing gently and affectionately on the back of the woman's rough hand with burn scars.
16:9, 수채화, no text. 촛불 아래 붉게 상기된 두 남녀의 얼굴 클로즈업.
16:9, watercolor, no text. Close-up of the flushed faces of the man and woman under the candlelight.
16:9, 수채화, no text. 여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이불 위로 천천히 쓰러지는 로맨틱한 실루엣.
16:9, watercolor, no text. Romantic silhouette of them slowly falling onto the blanket while embracing the woman's shoulders.
16:9, 수채화, no text. 땀에 젖어 사내의 가슴에 안긴 채 맑게 웃는 여인과 다정하게 미소 짓는 사내.
16:9, watercolor, no text. The woman smiling brightly while leaning on the man's chest, drenched in sweat, and the affectionately smili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