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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최고의 바람둥이 도령

조선남녀 2026. 5. 1. 07:30

조선 팔도 최고의 바람둥이 도령, 호열자(콜레라) 역병의 소굴에 갇히다! (출처: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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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질문형)

여러분, 조선 팔도를 누비며 여인들의 순정을 짓밟던 천하의 색골 도령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것도 함부로 버린 여인이 사실은 조선 최고의 의녀였다면? 그가 수작 부리러 들어간 마을이 시신이 산처럼 쌓인 호열자 소굴이었다면?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살려낸 사람이 바로 자신이 농락했던 그 천민 여인이었다면, 과연 이 천하의 난봉꾼은 어떤 최후를 맞았을까요? 어우야담에 전해지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 끝까지 들으시면 무릎을 치게 되실 겁니다.

※ 1: 한양 장안을 뒤흔든 색골 도령 김유경의 악행과 명성

조선 광해군 시절, 한양 장안에서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처녀들이 얼굴을 붉히고 유부녀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던 사내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김유경이라.

나이는 스물둘, 풍채는 헌헌장부에 글공부도 곧잘 하여 진사시까지 합격한 양반가 자제였습니다. 한데 이 도령, 글재주보다 더 뛰어난 재주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여인의 마음을 훔치는 재주였지요.

"아이고, 김 도령께서 또 오셨네. 이번엔 또 어느 댁 규수를 울리고 오셨소?"

종로 기방의 행수 기생이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자, 김유경은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울리다니, 사람을 어찌 그리 보시오. 나는 그저 인연 따라 정을 나눌 뿐이지. 떠날 때가 되면 떠나고, 만날 때가 되면 만나는 것이 사내대장부의 도리 아니겠소?"

'도리는 무슨 얼어 죽을 도리. 한 달 새 정인이 셋이 바뀌었거늘.'

행수 기생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워낙 돈을 잘 쓰는 단골이라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습니다.

이 김유경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그야말로 가관이었습니다. 북촌 박 진사 댁 셋째 딸과 혼담이 오갈 적엔 그 댁 침모와 정을 통하다 들켜 도망쳤고, 남산골 이 참판 댁 며느리가 친정 다니러 가는 길을 노려 사흘 밤낮을 함께 보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양반가 청상과부의 담을 넘다 떨어져 발목을 삐었다는 이야기까지 장안에 파다했지요.

여기서 잠깐, 어우야담을 엮은 유몽인 선생이 이런 풍속을 두고 한탄하시기를, "겉으로는 예의지국이라 하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욕정이 들끓어 강물을 이루었더라" 하셨으니, 김유경 같은 인물은 그 시대 어디에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김유경에게는 한 가지 철칙이 있었으니, 양반가 처녀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천민 여인은 더더욱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보게, 자네 그러다 천벌 받네. 사람이 어찌 그리 매정한가?"

벗이 걱정스레 말리자 김유경은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비웃었습니다.

"천벌? 하늘이 그리 한가하시면 진작 나를 데려가셨겠지. 인생은 짧고 미인은 많으니, 즐기지 않으면 그것이 도리어 죄일세."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언제까지 그 입을 놀리는지.'

벗은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고, 그날 밤도 김유경은 새로운 여인의 품을 찾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한양 바닥에서 더 이상 가지고 놀 여인이 없어 평양으로 떠난 것은 그해 늦가을의 일이었지요.

※ 2: 평양 기방에서 만난 천민 의녀 향단을 농락하고 버리다

평양은 색향(色鄕)이라, 미색이 천하제일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어여쁜 여인들이 많은 고장이었습니다. 김유경이 대동강변 객사에 짐을 풀자마자 한 일은 가장 이름난 기방을 찾아가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그가 마주친 사람은 기생이 아니었습니다.

기방 한구석에서 어느 늙은 기생의 등창을 침으로 다스리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나이는 스물 안팎, 무명저고리에 댕기머리, 손끝은 야무지고 눈빛은 맑았습니다.

"저 여인은 누군고?"

김유경이 묻자 행수 기생이 답했습니다.

"아, 향단이라 하옵는데, 평양 관아 의녀이옵니다. 어미가 관비라 신분은 천하나, 의술 하나는 평안도에서 으뜸이지요. 침술이며 약재며 모르는 것이 없답니다."

'호오, 천민 의녀라. 더 가지고 놀기 좋겠구나.'

김유경의 눈빛이 번뜩였습니다. 양반가 규수는 책임 추궁이라도 들어오지만, 천민 여인은 농락하고 버려도 누구 하나 따져 묻지 않으니 그에게는 더없이 만만한 사냥감이었지요.

다음 날부터 김유경의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향단이 약초를 캐러 가는 길목에 우연인 듯 나타나 시를 읊었고, 그녀가 환자를 보러 가는 곳마다 글공부하러 가는 척 마주쳤지요.

"낭자, 이 도령이 비록 한양에서 왔으나 낭자의 고운 마음씨 하나에 모든 것을 잊었소. 신분이 무에 그리 대수겠소? 내 그대를 정실로 맞아 한양으로 데려가리다."

향단은 처음엔 경계했으나, 김유경이 워낙 능청스럽게 시를 짓고 약값을 후하게 치러주며 진심인 양 행동하니, 차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련님, 천한 계집의 신세에 그런 말씀은 거두어 주세요. 저는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만족하옵니다."

"아니오, 낭자. 사람을 살리는 그 손을 어찌 천하다 하겠소? 내 어머니께서도 분명 낭자를 며느리로 흔쾌히 맞으실 게요."

'어머니는 무슨, 이 계집을 정실로 들였다간 가문에서 쫓겨날 일이지. 그저 한 철 즐기다 가면 그만이지.'

향단은 결국 그 거짓 맹세에 마음을 내어주었고, 두 사람은 대동강변 외딴 초가에서 한 달간 부부처럼 지냈습니다. 향단은 평생 모은 약초와 패물까지 풀어 김유경의 옷가지며 갓이며 새로 마련해 주었지요.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어느 새벽, 김유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남긴 것이라곤 짧은 쪽지 한 장.

"한양에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오. 곧 사람을 보내 데리러 오리다."

향단이 그 쪽지를 부여잡고 통곡한 것이 사흘 밤낮이었으나, 그가 보낸다던 사람은 영영 오지 않았습니다.

"도련님... 어찌 이러실 수가... 정녕 천한 계집이라 이리 버리시는 겝니까..."

향단의 눈물이 마를 즈음, 김유경은 이미 충청도 어느 외딴 마을을 향해 말을 달리고 있었지요.

※ 3: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충청도 외딴 마을로 들어서다

김유경이 평양을 떠나 정처 없이 남쪽으로 내려간 것은, 한양의 옛 정인이 자기를 찾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디 한적한 시골에서 한 두어 달 몸을 숨기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갈 작정이었지요.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충청도 어느 골짜기, 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한 마을 어귀에서 김유경이 큰소리로 사람을 불렀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고, 말도 사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요.

한참 만에 한 노인이 사립문을 빠끔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누렇고, 눈은 퀭하게 들어가 있었습니다.

"뉘시오..."

"보아하니 이 마을이 한적하고 경치가 좋아 며칠 묵어가고자 하오. 객사가 있으면 안내해 주시고, 없으면 사랑채라도 내어 주시면 후한 사례를 하리다."

노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도련님, 이 마을은 들어오시면 아니 되옵니다. 어서 다른 마을로 가시지요..."

"허허, 무슨 그런 박정한 말씀을. 보아하니 노인장 댁이 가장 큰 집인 듯하니 내 그 댁에 묵겠소. 사례는 넉넉히 하리다."

김유경은 노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말에서 내려 성큼성큼 마을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마을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했지요. 한낮인데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고,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집은 사립문이 활짝 열린 채 텅 비어 있었고, 어느 집 마당엔 주인 잃은 호미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요.

'이상한 마을이로구나. 허나 조용해서 좋군.'

그러다 김유경은 마을 한가운데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어느 집 마당에 거적때기로 덮인 무언가가 길게 누워 있었는데, 거적 끝으로 사람의 발이 빠져나와 있었던 것이지요.

"저, 저것이 무엇이오?"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 호열자(虎列刺)이옵니다."

김유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호열자라 함은 콜레라의 옛 이름, 한 번 걸리면 하루 이틀 새 사람을 시신으로 만드는 무서운 역병이었지요. 조선왕조실록에도 호열자가 한 번 돌면 한 고을 사람의 절반이 죽어 나간다 하였으니, 그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 마을이 호열자에 걸린 마을이란 말이오?"

"예... 이레 전부터 시작되어 벌써 마흔 명이 죽었사옵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모두 누워 앓고 있지요. 의원도 무당도 다 도망갔고, 관아에서도 마을을 봉쇄해 버렸으니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고 누구도 나가지 못하옵니다."

"뭐, 뭐라? 봉쇄?"

김유경이 황급히 마을 입구로 달려갔으나, 이미 관군들이 길목에 목책을 세우고 활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다! 더 가까이 오면 활을 쏘리라!"

김유경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 내가, 내가 사지(死地)에 제 발로 들어왔구나...'

※ 4: 마을의 정체 — 호열자가 휩쓸고 간 죽음의 소굴

그날 밤, 김유경은 노인의 사랑채에 누워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멀리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가끔 송장을 거두러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요. 그가 평생 즐기던 술과 여인의 흥취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죽음의 그림자만이 사방에서 그를 옥죄어 왔습니다.

"노인장, 이 마을에 의원은 정녕 한 명도 남아있지 않소?"

"의원은커녕 약초 한 줌 구할 수가 없사옵니다. 처음엔 이웃 고을 의원을 모셔왔으나 그자도 사흘 만에 죽었지요. 이제는 누구도 이 마을에 발을 들이지 않사옵니다."

"허면 약은? 약은 어찌 구하오?"

"관아에서 사흘에 한 번 목책 너머로 던져주는 미음과 보리쌀이 전부이옵니다. 그것도 약이 아니라 그저 굶지 말라는 것이지요."

김유경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지요. 그가 농락했던 수많은 여인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북촌 박 진사 댁 침모, 남산골 이 참판 댁 며느리, 청상과부 김 씨, 그리고... 평양의 향단.

'향단이...'

그녀의 맑은 눈빛, 약초 캐던 야무진 손끝, "도련님" 하고 부르던 떨리는 목소리가 떠오르자, 김유경의 가슴이 처음으로 뜨끔거렸습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정실로 맞겠다 약조하고 그리 매정하게 떠나왔으니... 그 아이가 지금쯤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꼬...'

그러나 후회도 잠시, 다음 날 새벽부터 김유경은 갑자기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으윽... 이, 이게 무슨..."

설사가 물처럼 쏟아지고, 토악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눈은 움푹 꺼지며, 살갗에는 쥐가 나기 시작했지요. 그 유명한 호열자의 증세가 그대로 김유경을 덮친 것이었습니다.

"노, 노인장... 사람 살려주오... 으윽..."

노인이 달려와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아이고, 도련님... 호열자에 걸리셨구려. 이 병에 걸리면 하루를 못 넘기는데... 우리 마을에서도 멀쩡하던 사람이 아침에 앓다가 저녁에 죽어 나가옵니다..."

"노, 노인장... 약은... 약이라도..."

"약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그저 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김유경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서도 자기 신세가 너무 기가 막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천하의 김유경이, 한양 장안을 떨게 하던 그 김유경이, 충청도 산골에서 거적때기에 덮여 죽을 운명이라니.

'하늘이여... 정녕 이것이 내 죄에 대한 벌이옵니까... 향단아... 내 너에게 한 번만이라도 용서를 빌고 죽고 싶구나...'

그가 마지막 의식을 잃기 직전, 멀리서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스쳤지요.

"도련님! 도련님, 정신 차리세요! 향단이옵니다, 향단이가 왔사옵니다!"

김유경은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떴습니다. 흐릿한 시야 속에 한 여인의 얼굴이 보였지요. 무명저고리에 댕기머리, 약함을 품에 꼭 안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녀였습니다.

'향... 단이... 네가 어찌 여기에...'

그 한마디를 채 내뱉지 못하고, 김유경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 5: 도령이 호열자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향단이 충청도 그 외딴 마을에 나타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김유경이 평양을 떠난 뒤 사흘 밤낮을 통곡하던 향단은, 그러나 마냥 슬픔에만 잠겨 있을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평양 관아 의녀였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천직인 사람이었지요. 며칠 후 향단은 눈물을 닦고 다시 약함을 들었습니다.

"버림받은 것이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리라. 허나 내 도련님이 한양으로 무사히 돌아가셨는지 그것만은 알아야겠다."

그녀가 한양을 향해 길을 나선 지 보름째, 충청도 어느 객점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충격적인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 그 산골 마을이 호열자로 폐촌이 되었다지 뭐요. 한양에서 내려오던 어느 양반 도령이 모르고 들어갔다가 같이 갇혔다는데, 그 도령도 이미 죽었을 게 분명하지."

향단의 손에서 숟가락이 떨어졌습니다.

"그, 그 도령의 행색이 어떠하다 하옵니까?"

"훤칠한 키에 한양 말씨, 옥색 도포에 갓끈에 호박 구슬을 달고 있었다 하더이다."

향단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김유경이었지요. 자신이 패물을 풀어 마련해 준 그 옥색 도포, 그 호박 갓끈.

"도련님이... 도련님이 호열자에..."

다른 여인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통곡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허나 향단은 달랐지요. 그녀는 그날 밤 잠도 자지 않고 자기가 가진 모든 약재를 점검했습니다.

호열자에 듣는 약이라야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던 시절이었으나, 향단은 어려서부터 평양 관아의 늙은 의관 밑에서 배운 비방이 하나 있었지요. 황련(黃連), 백출(白朮), 갈근(葛根)을 진하게 달여 먹이고, 곽향(藿香)으로 토악질을 멈추게 하며, 끓인 소금물을 자주 흘려 넣어 기운을 돋우는 법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가자면, 조선 후기 의서 동의보감에도 호열자(당시엔 곽란이라 불렸지요)에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이 효험이 있다 적혀 있으니, 향단의 의술은 결코 무당 수준의 미신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정통 의학이었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향단은 약재 보따리를 짊어지고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목책 앞에 이르자 관군들이 활을 겨누었지요.

"멈추어라! 이 마을은 봉쇄되었다!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온다!"

"소녀는 평양 관아 의녀이옵니다. 이 안에 제 사람이 있사오니 들여보내 주시옵소서."

"어허, 이 무지한 계집이! 들어가면 죽는다 하지 않느냐!"

"죽어도 좋사옵니다. 들여보내 주시옵소서!"

향단의 결연한 눈빛에 관군 대장도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의녀의 패(牌)를 확인한 그는 결국 한숨을 쉬며 길을 열어주었지요.

"한 번 들어가면 우리도 너를 다시 내보내 줄 수 없다. 그래도 가겠느냐?"

"가겠사옵니다."

향단은 망설임 없이 목책을 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군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지요.

"저 여인이 정녕 사람이냐 보살이냐..."

향단은 마을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집집마다 들여다보며 김유경의 행방을 묻고,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며 길을 묻기를 반나절. 마침내 마을 한복판 노인의 집에서, 사색이 되어 누워 있는 김유경을 발견한 것이었지요.

"도련님! 도련님, 정신 차리세요!"

향단의 목소리에 그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을 때, 그녀는 이미 약함을 풀어 헤치고 있었습니다.

※ 6: 향단이 나타나 목숨 걸고 그를 치료하다

그날부터 향단의 사투(死鬪)가 시작되었습니다.

호열자에 걸린 사람을 살리려면 무엇보다 한시도 곁을 떠나선 안 되는 법이었지요. 향단은 김유경의 머리맡에 작은 화로를 놓고 약을 끓이며, 한 식경에 한 번씩 약물을 그의 입에 흘려 넣었습니다.

"도련님, 한 모금만 더 삼켜 주세요. 한 모금만요..."

김유경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향단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자기 옷고름을 풀어 그의 식은땀을 닦고, 자기 치마폭으로 그의 더러워진 자리를 갈아주었지요. 손발이 차가워질 때면 자기 가슴에 그의 손을 품어 녹이고, 입술이 마르면 자기 손가락으로 물을 적셔주었습니다.

이틀 밤낮을 향단은 한숨도 자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새벽, 김유경의 이마에 비로소 미열이 가시고 호흡이 고르게 돌아오기 시작했지요. 향단은 그제야 벽에 기대어 잠시 졸았습니다.

"향단아..."

희미한 부름 소리에 그녀가 화들짝 깨어났습니다. 김유경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도련님, 정신이 드세요? 아이고, 도련님..."

향단이 그의 손을 부여잡고 울자, 김유경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더듬었습니다.

"향단아... 네가, 네가 정녕 향단이가 맞느냐... 내가 죽어 저승에서 너를 보는 것이 아니냐..."

"아니옵니다, 도련님. 저승이 아니라 이승이옵니다. 살아나신 것이옵니다."

김유경은 그 자리에서 통곡했습니다. 평생 여인을 울리기만 했지 자기가 운 적은 없었던 그가, 천한 의녀의 손을 부여잡고 어린아이처럼 흐느꼈지요.

"향단아... 내가 짐승이었다... 내가 천하의 못된 놈이었다... 너를 그리 매정하게 버렸거늘, 어찌 네가 나를 살리러 왔단 말이냐... 어찌..."

"도련님, 그 말씀 마세요.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녀의 도리이옵니다."

"의녀의 도리라니! 천 리 길을 약함 지고 달려와 사지(死地)에 제 발로 들어오는 것이 어찌 단순한 도리이겠느냐! 향단아, 네가 사람이라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네가 보살이라면 나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다..."

김유경은 향단의 무릎에 머리를 박고 울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요.

"도련님, 아직 일어나시면 아니 되옵니다. 누우셔요."

"아니다, 향단아. 일어나야겠다."

"무슨 일이옵니까?"

"이 마을... 이 마을에 누워 죽어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마흔 명이 죽었고, 산 사람도 거의 모두 앓고 있다 하옵니다."

김유경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그가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빛, 사람을 살리겠다는 결심의 빛이었지요.

"향단아, 너 혼자 이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겠느냐?"

"약재만 충분하다면..."

"약재라면 내게 돈이 있다. 내 전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약재를 들여오겠다. 너는 살릴 사람을 살려라. 나는 그 약재를 구해 오마."

"하오나 도련님, 마을이 봉쇄되어 있사온데..."

김유경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봉쇄가 무슨 대수냐. 내 목책을 두드려서라도, 관군 대장 멱살을 잡아서라도 약재를 들여오리라. 향단아, 너 혼자 마흔 명을 죽게 했으니, 내가 마흔 명을 살려 그 빚을 갚으마."

향단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녀가 평양 대동강변에서 사랑했던 그 도련님이 아닌, 진짜 사내대장부의 모습이 거기 있었지요.

※ 7: 뼈저린 참회와 전 재산을 바친 역병 퇴치

김유경의 변신은 그야말로 환골탈태(換骨奪胎)라 할 만했습니다.

아직 다리가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그는 마을 입구 목책으로 갔습니다. 관군 대장에게 자기 이름을 대고, 한양 본가에 급히 사람을 보내 달라 청했지요.

"내가 한양 김 진사 댁 셋째 자제 김유경이오. 이 서찰을 우리 본가에 전해 주시면, 후한 사례를 약조하겠소이다."

서찰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불효자 유경, 호열자 마을에 갇혀 죽기 직전 한 의녀의 손에 살아났나이다. 이 마을 모든 백성을 살리지 못하면 저는 다시는 사람의 얼굴로 살 수 없사옵니다. 제 명의로 된 논 백 마지기와 한양 솔터의 집 한 채를 즉시 처분하시어, 그 돈으로 약재를 사 이 마을 목책 앞에 쌓아주시옵소서. 부모님께서 이 청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평생 다시는 부끄러운 자식이 되지 않겠나이다."

서찰을 받아 든 한양의 부모는 처음엔 노발대발했습니다.

"이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천한 의녀의 손에 살아났다니, 또 어느 계집에 홀린 게로구나!"

그러나 노복이 한양에서 내려온 친구를 통해 김유경이 정녕 호열자 마을에 갇혀 사경을 헤맸다는 사실, 향단이라는 의녀가 목숨 걸고 그를 살린 사실을 듣고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못난 놈이 그래도 사람 구실을 하려는 게로구나. 여보, 이번만은 들어줍시다."

김 진사는 결국 아들 명의의 논 백 마지기를 처분하고, 한양 솔터의 집까지 내놓았습니다. 그 돈으로 황련, 백출, 갈근, 곽향, 인삼, 감초 등 호열자에 듣는 약재가 수레로 다섯 채 분량 마련되었지요. 거기에 더해 깨끗한 보리쌀과 미역까지 함께 보냈습니다.

수레가 마을 목책 앞에 도착하자, 김유경은 향단과 함께 그 약재를 마을로 들여왔습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의 진짜 사투가 시작되었지요.

향단은 약을 짓고, 김유경은 그 약을 들고 집집마다 다녔습니다. 죽어가는 노인의 입에 약을 흘려 넣고, 어린아이의 등을 쓸어주고, 거적때기에 덮인 시신을 직접 거두어 마을 뒷산에 묻었지요. 평생 손에 흙 한 번 묻혀 본 적 없던 양반 도령이, 시체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도련님, 그 일은 소녀가 마을 사람과 함께 하겠사옵니다. 도련님은 약 짓는 일만 거드세요."

"아니다. 내 업보가 무거우니 내 손으로 갚아야 한다."

마을 노인이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고, 도련님... 도련님 같은 양반이 어디 있사옵니까... 우리 천한 마을 사람들 송장을 도련님 손으로 묻어 주시다니..."

"양반이 무에 그리 대단하오. 사람이 사람을 묻는 것이 도리지요."

열흘이 지나자 마을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새로 죽는 사람이 없어졌고, 앓아누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지요. 보름째 되던 날, 마을에서 가장 어렸던 일곱 살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마당에 나와 햇볕을 쬐었습니다.

"도련님, 의녀 누님! 저 좀 보세요! 일어났어요!"

향단이 그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고, 김유경도 옆에서 함께 울었습니다.

스무날째 되던 날, 마을에는 더 이상 호열자 환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관아에서도 조사관을 보내 확인하고는 마을의 봉쇄를 풀었지요.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김유경과 향단 앞에 줄지어 서서 큰절을 올렸습니다.

"도련님, 의녀 어른,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나이다..."

김유경은 그 절을 받으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평생 그가 받았던 어떤 칭송보다도, 어떤 여인의 추파보다도 더 값진 것이었지요.

※ 8: 의녀와 순정파 부부로 거듭난 해피엔딩

마을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그날 밤, 김유경은 향단을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로 데려갔습니다. 봄바람이 살랑이고,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지요.

"향단아."

"예, 도련님."

"내 너에게 한 가지 청이 있다."

"말씀하세요."

김유경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양반이 천민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조선 천지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는 망설임 없이 그리했지요.

"도, 도련님! 어찌 이러시옵니까! 일어나세요!"

"향단아, 일어나지 않으마. 내 너에게 평양에서 했던 그 거짓 약조를,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다시 하고자 한다."

"도련님..."

"내 너를 정실로 맞겠다. 우리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면 가문에서 쫓겨나도 좋다. 양반의 신분을 버리라 하면 버리겠다. 너 하나만 곁에 있다면 나는 농부가 되어도 좋고 약장수가 되어도 좋다. 향단아, 나와 혼인해 다오."

향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김유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지요.

"도련님, 소녀는 천한 의녀이옵니다. 도련님과는..."

"천하다는 말은 다시 입에 올리지 마라. 너는 마흔 명을 살린 보살이다. 천하다 함은 나 같은 놈을 두고 하는 말이지, 너에게 쓸 말이 아니다."

"... 도련님, 정녕이옵니까? 평양에서처럼 또 변하지 않으실 자신이 있사옵니까?"

김유경은 옷고름을 풀어 작은 칼을 꺼냈습니다. 향단이 깜짝 놀라 말리려 했으나, 그는 자기 손바닥을 살짝 그어 피를 내었지요.

"이 피로 맹세한다. 내가 너를 한 번이라도 다시 배신하면, 하늘이 나를 호열자보다 더 무서운 병으로 데려가시리라. 향단아, 받아 다오."

향단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댕기를 풀어 그의 손을 정성스럽게 싸매주었지요.

"도련님, 받겠사옵니다. 평생 도련님 곁에서 약 짓고 사람 살리며 살겠사옵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았습니다. 느티나무 위에서 부엉이 한 마리가 부드럽게 울었고, 달빛은 두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지요.

한양으로 돌아온 김유경은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모든 일을 고했습니다. 처음엔 호통을 치시던 부모님도, 마을 사람들이 보낸 만인소(萬人疏) — 마을 백성 모두가 손도장을 찍어 보낸 탄원서를 보시고는 마음이 풀어지셨지요. 그 탄원서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김유경 도령과 향단 의녀가 아니었다면 우리 마을은 폐촌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 분의 혼인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희 마을은 대대손손 두 분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부모님은 결국 향단을 며느리로 맞이하셨습니다. 비록 정실은 어려웠으나 양인(良人)으로 면천(免賤)시킨 후 부실(副室)이 아닌 둘째 부인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지요. (어우야담에 따르면 김유경의 본가에서는 향단을 위해 따로 호적을 정리하여 양반의 예로 대했다 합니다.)

김유경은 그 후로 다시는 다른 여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향단과 함께 작은 약방을 차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호열자가 도는 마을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두 사람은 약함을 메고 함께 달려갔지요.

세월이 흘러 김유경이 노년에 이르렀을 때, 어느 후학이 그에게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합니다.

"내 일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은, 호열자에 걸려 죽어가던 그 새벽 향단이가 내 머리맡에 나타나 준 그날이었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비로소 사람이 되는 법이지."

이 이야기는 어우야담뿐 아니라 충청도 일대 민간 설화로도 오래도록 전해 내려와, 지금도 그 마을 어귀에는 두 사람의 의로운 행적을 기리는 작은 비석이 남아 있다고 하지요.

장안 최고의 색골 도령이 호열자 마을에서 진짜 사람으로 거듭나, 천한 의녀와 백년해로한 이야기.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기보다는 권선개과(勸善改過), 즉 잘못을 깨닫고 고친 자에게 하늘이 복을 내린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미담이라 할 것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교훈형)

오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천하의 바람둥이도 죽음 앞에서는 진짜 자기 모습을 보게 되는 법이지요. 옛 어른들 말씀에 "사람은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겨 봐야 철이 든다"고 하셨는데, 김유경 도령이 바로 그 산 증인입니다. 또한 향단처럼 자기를 버린 사람조차 살려내는 그 너른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요. 살면서 한 번쯤은 내가 누군가에게 향단이었는지, 아니면 김유경이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더 흥미진진한 조선 남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썸네일 프롬프트 (영어, 16:9, 실사, no text)

A cinematic 16:9 photorealistic scene set in Joseon-era Korea at twilight. In the foreground, a handsome young Joseon nobleman in a disheveled pale blue silk hanbok and black gat hat lies weakly on a straw mat inside a dim thatched-roof room, his face pale and feverish, beads of sweat on his forehead, eyes half-closed. Beside him kneels a beautiful young Korean woman in a simple white cotton hanbok with a long black braided hair and red ribbon, holding a small wooden medicine bowl with both hands, her expression filled with deep concern and tender devotion, tears glistening in her eyes. A small clay brazier with steaming herbal medicine sits next to her, releasing soft white smoke. In the background through the open door, a dark eerie village with covered corpses on straw mats and dim lanterns suggests a plague-stricken atmosphere. Warm candlelight illuminates the woman's face contrasting with the cold blue moonlight outside. Highly detailed,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historical Korean drama cinematography, ultra-realistic textures, 8K quality, no text, no letters, no water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