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넘은 옥노리개 하나… 금지된 사랑이 가문의 원한을 녹였다
노리개를 돌려주는 핑계로 시작된 밀회가, 오히려 두 집안의 오해를 풀고 혼사로 이어진다.
태그(15):
#조선시대, #오디오드라마, #야담, #비밀연애, #로맨스, #밀회, #원수집안, #노리개, #설렘주의, #고수위로맨스, #ASMR, #사극로맨스, #금지된사랑, #혼례, #양반가
#조선시대 #오디오드라마 #야담 #비밀연애 #로맨스 #밀회 #원수집안 #노리개 #설렘주의 #고수위로맨스 #ASMR #사극로맨스 #금지된사랑 #혼례 #양반가



후킹멘트:
"원수 집안의 담장을 넘어간 옥노리개 하나.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억눌렸던 두 남녀의 욕망을 깨우는 아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서슬 퍼런 가문의 원한도, 칠흑 같은 밤의 어둠도 그들의 뜨거운 숨결을 막지는 못했죠. 들키면 목숨마저 위태로운 좁고 어두운 담장 밑 밀회. 오직 서로의 체온과 거친 숨소리에만 의지했던, 그 아슬아슬하고도 관능적인 조선의 밤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굳게 닫힌 문창살 너머, 아무도 몰랐던 두 남녀의 은밀한 속사정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늦은 오후, 경계의 담장 너머로 떨어진 옥노리개.
조선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문거족, 안동 김씨 가문과 전주 이씨 가문. 두 집안은 얄궂게도 북촌 한복판에 높다란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었다.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두 가문의 원한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그 살벌한 기운 탓에 두 집안을 가르는 기와 얹힌 돌담은 유난히도 높고 견고했다. 하인들조차 담장 근처에서는 숨을 죽여야 했고, 두 가문의 자제들은 태어날 때부터 저 담장 너머에는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 살고 있다 세뇌를 받으며 자라났다. 봄바람이 담장 위를 시샘하듯 넘나들며 꽃가루를 흩뿌리던 늦은 오후, 김 대감의 금지옥엽 외동딸 연희는 아무도 없는 뒷마당 담장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쪽으로 넘어갈 게 뭐람. 아버님이 아시면 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도 남으실 텐데. 어찌 그 귀한 것을 이리 허망하게 놓쳤단 말인가.'
연희의 하얀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겨주신 귀한 백옥 나비 노리개가 문제였다. 봄볕이 좋아 치마춤에 달고 나왔던 것이, 별안간 불어닥친 돌풍에 매듭이 풀리며 포물선을 그리듯 저주받은 원수 집안, 이 대감 댁 뒷마당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발돋움을 해보아도 까마득히 높은 담장. 연희가 옥색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담장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낮고 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도 귀하고 정교한 물건이 어찌 더러운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는고. 주인이 안다미로 애타게 찾을 법한데."
순간 연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소름이 쫙 끼쳤다. 목소리의 주인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대감의 장남, 소문난 냉혈한이자 한양 최고의 사내로 꼽히는 도진이었다.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스물 남짓한 나이에 벌써 조정의 요직을 꿰찬 그는, 김 대감 댁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연희가 조심스레 담장 한구석,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작게 뚫린 돌 틈새로 떨리는 눈을 가져다 대었다.
기다렸다는 듯 틈새 너머로 서늘하고도 깊은 도진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정면으로 마주쳐 왔다. 숨이 멎을 듯한 찰나의 시선 교환. 연희는 제 숨소리마저 들킬까 두려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도진의 크고 단단한 손바닥 위에는 연희의 백옥 나비가 저녁 햇살을 받아 영롱하고도 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도진은 담장 틈새 너머로 자신을 훔쳐보는 연희의 겁먹은 눈동자를 빤히 응시하며, 입가에 호랑이처럼 나른하고도 위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내 것이오. 바람에 끈이 풀려 우연히 담을 넘어간 것이니, 군자라면 응당 당장 돌려주시오."
연희가 용기를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자 도진이 담장 쪽으로 한 걸음 바짝 다가왔다. 그의 짙은 체취와 사향 냄새가 돌 틈을 타고 연희의 코끝을 스쳤다.
"김 대감 댁 애기씨의 물건이로군. 담장 틈새로 보이는 눈망울이 꼭 겁먹은 산토끼 같소만. 원수의 집 마당에 떨어진 전리품을 이리 말 한마디로 쉽게 내어줄 줄 아셨소? 그리 만만한 사내가 아님을 잘 아실 텐데."
"그, 그럼 어찌해야 돌려주시겠단 말이오? 은자라도 원하신다면…"
"은자 따위가 내게 무슨 소용이겠소. 정히 이 어미의 유품을 돌려받고 싶거든, 오늘 밤 자정, 담장 끄트머리 으슥한 곳에 허물어진 개구멍으로 오시오. 직접, 그 어여쁜 손에서 손으로 전해드릴 테니. 행여 사람을 보내거나 약조를 어긴다면, 이 나비는 내일 아침 김 대감의 밥상 위에 올라가 있을 것이오."
도진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지독한 강압이 서려 있었다.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스르륵 멀어지는 사내의 발걸음 소리에, 연희는 달아오른 두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그 자리에 털썩 주렁앉고 말았다.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원수의 아들을 한밤중에 단둘이 대면하다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틈새로 마주쳤던 도진의 그 짐승처럼 번뜩이던 짙은 눈빛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두려움인지, 아니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사내의 압도적인 기운에 대한 알 수 없는 기대감인지, 연희의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 2: 깊은 밤, 담장 밑 개구멍에서의 첫 밀회와 아찔한 거래.
구름이 달빛마저 시커멓게 삼켜버린 칠흑 같은 자정. 풀벌레 소리조차 잦아든 고요한 밤의 적막 속에서, 연희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으로 검은 쓰개치마 자락을 꽉 쥔 채 담장 끄트머리의 좁은 틈새를 향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튀어나올 듯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들키면 가문의 수치요, 아버지의 성정상 곧바로 사약을 내릴지도 모를 엄청난 짓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어둠에 잠긴 담장 끄트머리, 무성한 잡초 사이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개구멍이 보였다. 연희가 조심스레 몸을 낮춰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찰나였다.
어둠 속에서 불쑥, 강철처럼 단단하고 억센 사내의 팔이 튀어나와 연희의 가는 허리를 짐승처럼 낚아챘다.
"앗…!"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연희의 몸은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담장 안쪽, 도진의 넓고 뜨거운 품으로 곤두박질치듯 끌려 들어갔다. 거친 흙바닥 위로 두 남녀의 몸이 무겁게 겹쳐졌다. 연희가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소리를 내려 하자, 도진의 커다랗고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틈도 없이 꽉 틀어막았다.
"쉿, 김 대감 댁 애기씨가 밤이 외로워 원수 댁 도령을 찾아왔다고 온 동네에 소문내고 싶은 게요?"
도진의 뜨거운 체온과 함께 짙은 묵향, 그리고 사내 특유의 땀 냄새가 연희의 숨결 사이로 확 끼쳐 들어왔다. 연희는 극도의 공포와 당혹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둥거렸지만,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도진의 체구는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잠깐 얼굴을 내민 달빛 아래, 도진의 얼굴이 섬뜩할 정도로 가깝게 드러났다. 낮의 그 서늘하고 고고하던 선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연희를 내려다보는 도진의 눈빛은,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직전의 굶주린 늑대처럼 붉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노, 노리개를… 약조대로 노리개를 주시오."
연희가 도진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입술을 비틀어 빼내며 헐떡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내가 이리도 쉽게 내어주겠다고 약조한 적은 없는 듯한데."
도진이 연희의 허리를 감아쥔 팔에 왈칵 힘을 주어, 자신의 단단한 가슴팍과 하복부로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숨 막히게 바짝 밀착시켰다. 얇은 명주 저고리와 바지 한 벌을 사이에 두고, 사내의 단단하게 성난 근육과 뜨거운 심장 고동이 연희의 맨살 위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 노골적이고도 폭력적인 밀착에 연희는 수치심에 눈물이 핑 돌았다. 도진의 반대편 손이 연희의 턱을 억세게 잡아 위로 들어 올리더니, 그녀의 귓가로 불덩이 같은 숨결을 거칠게 내뱉었다.
"이리도 겁이 많고 파스텔처럼 연약한 몸으로, 원수의 소굴에는 어찌 그리 겁도 없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셨소. 내 오늘 밤, 감히 이 담장을 넘어온 그 발칙한 대가를 아주 톡톡히 받아내야겠소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진의 손가락이 연희의 가늘고 떨리는 목선을 타고 뱀처럼 천천히 흘러내려 저고리 고름 위를 농밀하게 맴돌았다. 연희는 밀어내야 한다는 얄팍한 이성과 달리, 그의 뜨거운 손길이 닿는 곳마다 번개에 맞은 듯 찌릿한 쾌감이 번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흠칫 몸을 떨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버님이 아시면… 나는 끝이야…' 머릿속으로는 수백 번 경고음이 울렸지만, 몸은 이미 이 압도적인 사내의 기운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다.
"내게 집중하시오, 연희. 지금 이 순간, 다른 사내나 집안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건 질색이니까."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경고와 함께, 도진의 입술이 마침내 연희의 붉고 촉촉한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그저 닿는 수준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억눌려왔던 두 가문의 원한을 비웃듯, 아니면 오랫동안 굶주렸던 갈증을 해소하듯 터져 나온 폭발적이고도 집요한 입맞춤이었다. 도진의 뜨거운 혀가 굳게 닫힌 연희의 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녀의 달콤한 입안을 남김없이 유린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농밀한 키스에 연희의 작은 두 손이 저항하듯 도진의 넓은 어깨를 밀어내 보았지만, 이내 힘이 탁 풀린 채 그의 옷깃을 생명줄처럼 꽉 부여잡고 말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며 오직 입술을 탐하는 이 사내의 뜨거운 체온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원수 집안의 담장 밑, 차가운 흙바닥 위에서 피어오른 두 남녀의 질척한 열기는 그 밤의 어떤 어둠보다도 깊고 짙게,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 3: 버려진 별채,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격렬한 탐닉.
노리개를 핑계로 시작된 달밤의 아슬아슬한 밀회는 독버섯처럼, 아니 지독한 마약처럼 두 사람의 이성을 갉아먹으며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이레가 지난 늦은 밤, 두 사람은 담장 근처 숲이 우거져 하인들의 인적조차 끊긴 이 대감 댁의 낡고 버려진 별채 바닥에 마치 한 몸처럼 엉켜 있었다. 달빛만이 찢어진 창호지를 뚫고 희미하게 스며드는 먼지 쌓인 방 안. 서늘한 밤공기가 무색할 정도로 방 안은 두 사람의 가라앉은 가쁜 숨소리와 질척하게 살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옷감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소리로 은밀하고도 끈적하게 채워져 있었다.
"도진 도령… 아아… 잠, 잠깐만요… 읏,"
도진의 거칠고 급박한 손길에 연희의 연분홍빛 명주 저고리가 속절없이 벗겨져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얗게 빛나는 눈부신 어깨와 목선이 드러나자, 도진은 굶주린 맹수처럼 그 위로 얼굴을 파묻고 뜨거운 입술을 자국이 남도록 깊게 묻었다. 그의 혀끝이 쇄골을 핥아 올리자, 연희는 짐승처럼 앓는 교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뒤로 하염없이 젖혔다. 그녀의 두 손은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낡은 장판 바닥을 긁어댔다.
"입으로는 늘 거부하고 밀어내면서, 이 작은 몸은 이리도 솔직하고 음탕하게 나를 반기고 있지 않소. 내 손길 한 번에 이리 파르르 떨면서 말이지."
도진의 굵고 거친 손가락이 연희의 풍만한 가슴을 힘겹게 덮고 있던 얇은 하얀 속적삼의 매듭을 단숨에 끊어내듯 풀어헤쳤다. 서늘한 밤공기가 땀에 젖은 달아오른 맨살에 닿는 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도진의 집요하고도 뜨거운 혀끝이 그녀의 붉게 솟아오른 여린 살결을 머금고 강하게 빨아당기자, 연희의 낭창한 등허리가 활처럼 높게 휘어졌다.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사내는 완전히 미쳤어…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는 나도 미친 게 분명해…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거야…'
하지만 지옥 불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성이 완전히 마비될 것 같은 아찔한 감각 속에서, 연희는 도진의 단단한 목을 두 팔로 꽉 끌어안고 땀방울이 맺힌 그의 귓바퀴를 살짝 깨물며 작게 신음했다. 그 미약한 자극에 도진의 거대한 몸이 흠칫 굳어지더니, 이내 짐승 같은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연희의 치맛자락 안으로 크고 뜨거운 손을 거침없이 밀어 넣었다. 그녀의 여리고 젖은 중심을 희롱하는 도진의 솜씨는 능수능란했고 잔인할 정도로 집요했다.
금기된 사랑, 절대로 섞여서는 안 될 원수 집안의 피. 이 모든 배덕감과 공포심은 오히려 두 사람의 끓어오르는 정념에 시뻘건 기름을 들이부은 듯, 평범한 연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폭발적이고도 파괴적인 쾌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서로의 타액이 진득하게 섞이고, 맨살과 맨살이 거칠게 마찰하며 내는 질척하고도 외설적인 소리가 텅 빈 별채 안을 꽉 채웠다. 두 사람은 마치 내일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형수들처럼, 오직 서로의 체온과 살점만을 생명줄처럼 파고들며 밤새도록 지독하게 서로를 갈구하고 또 탐닉했다.
※ 4: 살을 맞댄 채 속삭이는, 두 가문 원한의 허망한 진실.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짐승 같은 정사가 끝난 후. 낡은 별채 방바닥에는 찢기고 구겨진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사내의 도포 자락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옷가지를 대충 맨몸 위에 끌어 덮은 채, 서로의 뜨거운 온기를 깊이 나누며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열기에 달아올랐던 숨결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고, 창틈으로 스며든 창백한 달빛이 땀에 젖어 윤기가 흐르는 두 사람의 나신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도진의 굵고 단단한 팔베개를 벤 연희가 그의 널찍한 가슴팍에 난 상처 자국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듯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쓸어내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쾌락에 허덕이던 요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연인을 향한 깊은 애정과 허탈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참으로 기구하고 우습지 않소? 환한 대낮에는 양가 어르신들이 서로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듯 눈에 핏발을 세우고 으르렁거리는 원수인데, 달이 뜬 이 어두운 방 안에서는 우리가 이토록 부끄러움도 없이 살을 맞대고 떨어질 줄을 모르고 엉켜 있으니 말이오. 하늘이 우리를 벌하시겠지요."
연희의 자조 섞인 한탄에 도진이 그녀의 땀에 젖은 부드러운 머리칼을 큰 손으로 다정하게 쓸어넘기며 낮게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소리에는 기막힘과 어이없음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원수라… 지독한 원수 집안이라. 연희, 그대는 우리 두 가문이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토록 50년 넘게 높은 담장을 쌓고 피 터지게 싸우며 원수가 되었는지, 그 진짜 이유를 정확히 아시오?"
"그야… 아버님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기로는, 오래전 선대 조부 어르신들께서 조정에서 심각한 당파 싸움으로 큰 화를 입으셨고… 그 정치적 피바람의 과정에서 이 대감 댁, 그러니까 도련님의 조부께서 우리 집안을 억울하게 모함하여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그래서 뼛속까지 원한이 사무친 것이라 알고 있소만."
연희의 진지한 대답에 도진은 참지 못하고 기어이 소리 내어 헛웃음을 빵 터뜨리고 말았다.
"당파 싸움? 정치적 피바람과 모함? 하아, 참으로 체면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양반들다운 그럴싸하고 거창한 포장이구려. 내, 얼마 전 우리 집안에서 평생을 바친 늙은 종사방 영감을 술로 구워삶아 몰래 전해 들은 진짜 기가 막힌 진실을 말해주리까? 그 알량한 원수놀음의 시작을 말이오."
연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들어 도진의 턱선을 올려다보았다. 도진의 눈에는 조소와 허탈함이 가득했다.
"자그마치 50년 전의 일이오. 그대의 조부와 나의 조부께서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 두 분은 사실 둘도 없는 막역지우(莫逆之友)로 함께 산으로 사냥을 나가셨지. 그런데 산속에서 그대의 조부께서 끔찍이도 아끼시던 점박이 사냥개 한 마리가 멧돼지를 쫓다 도망을 쳤고, 며칠 뒤 산을 헤매던 그 똥개를 우리 조부께서 우연히 주워다 앞마당에 묶어놓고 기르신 게요. 뒤늦게 그걸 발견한 그대의 조부가 '당장 내 개를 돌려달라' 노발대발하셨고, 우리 조부께선 '산에서 길 잃은 짐승을 거둬 먹였으니 이제 내 개다'라며 맞서셨지. 그 유치한 말싸움이 멱살잡이로 번지고, 급기야 온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두 양반이 서로의 상투와 수염을 쥐어뜯으며 흙바닥에서 진흙탕 난투극을 벌인 게요. 그것이… 우리가 목숨을 걸고 밀회를 즐겨야 하는 이 지독한 가문 원한의 시초이자 전부요."
연희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가 이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 사냥개 한 마리? 고작 그 점박이 똥개 한 마리 때문에… 이 오랜 세월 담장을 그토록 높게 쌓고, 서로 눈만 마주쳐도 죽일 듯이 칼을 갈며 그 난리를 쳤단 말이오? 정치적 모함이 아니라?"
"그렇소. 그 잘난 양반들의 알량한 자존심과 고집불통 오해 때문에. 참으로 허망하고 우스꽝스럽지 않소? 고작 사냥개 한 마리 소유권 다툼 때문에, 하마터면 내 품에 안겨 이리도 뜨겁게 신음하는 이토록 어여쁜 여인을 평생 미워하고 저주하며 살 뻔했으니 말이지. 내 조부님이나 그대의 조부님이나 꽉 막힌 노친네들이긴 매한가지요."
도진이 멍해진 연희의 코끝에 가볍게, 그러나 진한 애정을 담아 입을 맞추었다. 너무나도 어이없고 허탈한 진실. 하지만 그 바닥 모를 허무함은 오히려 두 사람을 짓누르던 엄청난 죄책감과 중압감을 한순간에 먼지처럼 날려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를 잡고 끅끅거리며 실실 웃음을 터뜨렸다. 원수 집안이라는 족쇄가 사실은 녹슨 철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들의 몸짓에는 이전의 어둡고 무겁던 배덕감 대신 훨씬 더 가볍고, 깊고, 애틋한 감정이 폭포수처럼 녹아들고 있었다. 도진의 눈빛이 다시금 짙게 가라앉으며 연희의 허리를 거칠게 감아당겼다. 허망한 원한이 벗겨진 자리에는, 다시 불타오르는 날것 그대로의 정욕만이 남겨져 있었다.
※ 5: 발각의 위기,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달아오르는 정념.
"누구냐! 방금 저 버려진 별채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느냐! 썩 나와서 정체를 밝히지 못할까!"
두 사람의 허탈하고도 달콤한 웃음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 고요하던 밤의 정적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날카롭고 우렁찬 고함 소리가 벼락처럼 별채 마당을 울렸다. 야간 순찰을 돌고 있던 이 대감 댁의 노비 무리가 인적이 끊긴 별채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기척과 사람의 목소리를 귀신같이 잡아낸 것이다. 찰나의 순간, 화들짝 놀란 연희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오려 하자, 도진이 표범처럼 날랜 동작으로 몸을 날려 커다란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끝이다. 들키면 모든 게 끝장이다. 나 혼자 멍석말이를 당하고 쫓겨나는 건 견딜 수 있지만, 애먼 연희의 가문까지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 큰 화를 입을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도진은 한 손으로는 연희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닥에 널브러진 두 사람의 옷가지를 대충 쓸어 모아 쥐었다. 그리고는 연희의 가는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채, 방 한구석에 쳐져 있던 낡고 묵직한 산수화 병풍 뒤의 좁디좁은 틈새로 짐승처럼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이 숨을 죽이자마자, 별채의 낡은 방문이 거칠게 부서질 듯 열리며 시뻘건 횃불의 불길이 방 안으로 폭우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어허, 분명 사람 말소리가 들렸는데… 고양이 놈들의 소행인가?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보거라! 쥐새끼 한 마리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노비들의 거친 발소리가 별채의 낡은 나무 마루를 쿵쿵 울리며 턱밑까지 다가왔다. 병풍 뒤의 비좁고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나는 공간, 두 사람의 헐벗은 몸은 단 1촌의 빈틈조차 없이 완벽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도진의 넓고 단단한 등판이 차가운 흙벽에 바짝 닿아 있었고, 연희는 그의 뜨거운 품에 완전히 안긴 채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넘실거리는 횃불의 시뻘건 빛이 뱀의 날름거리는 혀처럼 방 안의 어둠을 핥으며 두 사람이 숨은 병풍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 속에서 연희의 가쁘고 뜨거운 숨결이 도진의 맨가슴을 한없이 간질였다. 귓가에서 노비들의 대화 소리가 숨결처럼 가깝게 울려 퍼졌다.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숨 막히는 공포와 배덕감은,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의 온몸에 흐르는 감각을 미칠 듯이 예민하고 뾰족하게 곤두세웠다. 위기의 순간, 사내의 본능은 두려움보다 정복욕을 먼저 깨우는 법이었다. 도진은 숨을 죽인 채 자신의 품 안에서 파르르 떠는 연희의 부드러운 맨살을 느끼며, 아랫배로 뻐근하게 몰려드는 통제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를 자각했다.
도진은 자신도 모르게 연희의 허리를 감고 있던 억센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풍만한 아랫도리를 자신의 성난 중심부로 빈틈없이 짓눌렀다. 그 노골적이고도 폭력적인 마찰에 연희의 두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이 미친 사내가… 목숨이 오가는 이 와중에 또 발정을 한단 말인가…!' 연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도진을 올려다보았지만,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도진의 눈동자는 이미 맹수의 그것처럼 짙은 정욕으로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살기 위해 도진의 굵은 목을 생명줄처럼 꽉 끌어안고 있던 연희 역시, 자신의 아랫도리를 파고드는 사내의 뜨겁고 묵직한 열기에 속절없이 아찔한 전율을 느끼며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에잇, 아무도 없지 않사옵니까. 헛것을 들으신 모양입니다요. 바람 소리겠지요."
"음… 그럴 리가 없는데. 하긴, 이 오밤중에 이 귀신 나올 듯한 폐가에 뉘가 들어오겠느냐. 그만 철수하자꾸나."
천만다행으로 노비들의 발소리가 하나둘 방을 빠져나가고, 별채 마당을 벗어나 완전히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뻘겋게 방안을 채우던 횃불의 불빛도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칠흑 같은 어둠과 적막이 내려앉았다. 살을 에는 듯한 긴장감이 풀리자, 연희는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며 도진의 가슴팍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이 채 끝나기도 전, 도진의 뜨겁고 탐욕스러운 입술이 미친 듯이 연희의 목덜미와 귓바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두려움 뒤에 찾아온 지독한 안도감은, 아까보다 훨씬 더 맹렬하고 절박한 원초적인 정욕으로 돌변해 두 사람의 이성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도진은 좁은 병풍 뒤에서 연희를 차가운 벽으로 거칠게 밀어붙인 채, 짐승의 교미처럼 사납게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흐읏… 아아… 도, 도련님…" 연희의 억눌린 교성이 도진의 입안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병풍이 쓰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가운데, 두 사람은 그 어떤 제약도 잊은 채 땀범벅이 된 서로의 살점을 미친 듯이 탐하며 어둠 속에서 가장 원초적이고도 난잡한 쾌락의 구렁텅이로 기꺼이 빠져들고 있었다.
※ 6: 대낮의 마당, 노리개를 쥔 채 두 아비 앞에 선 남녀.
그로부터 며칠 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고 눈부신 대낮. 양 가문의 삼엄한 경계인 돌담 앞이 그야말로 발칵 뒤집히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도진이 대낮에 번듯한 관복을 차려입고, 연희의 백옥 나비 노리개를 손에 꽉 쥔 채 김 대감 댁의 두꺼운 솟을대문을 부수듯 걷어차고 성큼성큼 들어간 것이다. "마당의 빗자루질을 하던 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고, 안채에서 차를 마시던 김 대감은 사색이 되어 댓돌 위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소식을 듣고 몽둥이를 든 하인들을 이끌고 담장을 빙 돌아 뛰어온 이 대감 역시 기가 막혀 숨을 헐떡였다. 두 가문의 수장인 이 대감과 김 대감은 넓은 마당 한가운데서 살기를 뿜어내며 짐승처럼 대치했다.
"이 천하의 몹쓸 호로자식 같으니! 어찌 네놈이 감히 내 금지옥엽 딸아이의 순결한 노리개를 그 더러운 손에 쥐고 있단 말이냐! 당장 그 물건을 내놓고 그 자리에서 목을 매달지 못할까!"
김 대감이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핏대를 세우고 소리치자, 이 대감 역시 아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이 쳐죽일 놈! 네가 기어이 미쳐 단단히 실성하였구나! 어찌 원수의 집 마당에 제 발로 기어들어 가 가문의 얼굴에 똥칠을 한단 말이냐!"
그러나 도진은 두 아비의 살벌한 호통 앞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나 물러섬 없이 태산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는 손에 쥔 백옥 나비를 태양 빛 아래로 높이 치켜들며, 마당에 모인 모든 이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로 폭탄선언을 내뱉었다.
"이 노리개는 제가 우연히 주운 것이 아닙니다. 김 대감 댁의 연희 아가씨께, 제가 직접 그녀의 손에서 정표로 받아낸 것입니다. 아버님, 그리고 김 대감 어르신. 저희 두 사람은 이미 이 높디높은 담장 밑에서 서로의 연심을 확인하였고, 칠흑 같은 밤의 어둠 속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 온전히 서로의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나누고 취한 사이입니다. 저는 이미 연희 아가씨의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도진의 파렴치하고도 충격적인 선언에, 꼿꼿하게 서 있던 두 대감은 그대로 뒷목을 뻣뻣하게 잡고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주변을 둘러싼 하인들조차 경악에 찬 비명을 지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십 년 원수 집안의 자제들이 야밤에 밀회를 즐기고 몸을 섞었다니, 이는 양반가의 체면을 송두리째 박살 내는 희대의 스캔들이었다. 김 대감이 핏발 선 눈으로 칼을 뽑아 도진에게 달려들려는 찰나였다.
"아버님! 제발 검을 거두시고 이성을 찾으시옵소서!"
안채의 미닫이문이 거칠게 열리며, 화려한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연희가 쏜살같이 마당으로 달려와 도진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다소곳하고 연약하던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연희의 손에는 누렇게 바래고 낡은 문서 한 권이 꽉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도진이 밤새 옛 종사방에게서 얻어내 연희에게 건넨, 두 가문의 해묵은 비밀이 담긴 일기장이었다.
"저희 가문이 50년 동안이나 피 터지게 싸우며 수많은 사람을 옥에 가두고 담장을 철옹성처럼 높인 이유가, 아버님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당파 싸움 때문인 줄 아십니까? 모함 때문인 줄 아시냐고요! 천만에요! 여기, 이 낡은 기록을 똑똑히 보십시오! 50년 전 선대 할아버님들께서 산속에서 길 잃은 '복구'라는 이름의 점박이 사냥개 한 마리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진흙탕에서 서로의 상투를 쥐어뜯고 수염을 뽑으며 개싸움을 벌인 것이 이 지독하고도 끔찍한 원한의 진짜 시작입니다!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에요!"
연희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펼쳐진 문서의 내용에, 노발대발 날뛰던 두 대감의 동작이 얼음물에 처박힌 듯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양 가문의 은밀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민망한 진짜 치부가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마당을 가득 채웠던 팽팽한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헛기침 소리와 함께 하인들이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는 소리만이 적막을 채웠다. 명분 없는 개싸움과 자존심에 눈이 멀어, 자식들의 목숨을 건 절절한 사랑까지 칼로 베어내려 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뼛속 깊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두 대감의 붉으락푸르락하던 얼굴은 이내 창백하게 질렸다가, 또다시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달아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정적의 순간, 도진이 연희의 가녀린 손을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굳게 꽉 맞잡은 채, 두 아비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연희 역시 눈물을 글썽이며 도진의 옆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었다.
"비록 어리석은 강아지 한 마리에서 시작된 미움일지언정, 그 긴 세월 동안 두 가문이 겪은 반목의 고통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허나 이제 그 허망한 원한은 두 집안을 가로막고 있는 저 답답한 담장과 함께 부숴버리십시오. 저희 두 사람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서로를 놓지 않을 것입니다. 저 도진, 연희 아가씨를 평생 제 목숨보다 귀히 여기고 은애할 것임을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결연하고도 애절한 두 남녀의 읍소와, 서로를 꽉 쥔 두 손. 그리고 가문의 수치스러운 비밀 앞에서 할 말을 잃어버린 두 아비. 마침내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두 집안을 옥죄고 단절시켰던 저주받은 원한의 굳건한 돌담이, 두 남녀의 지독한 사랑 앞에서 소리 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7: 화촉동방, 합환주와 함께 얽혀드는 두 사람의 완전한 결합.
그로부터 석 달 뒤. 한양 땅이 떠들썩할 정도로 성대하고 화려한 혼례가 치러졌다. 양 가문을 가로막고 있던 그 높고 흉물스럽던 돌담은 인부들에 의해 완전히 헐려 나가고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하나의 커다란 앞마당이 된 양 가문의 터전 위로 축하의 풍악 소리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안채 깊숙한 곳, 화려한 모란꽃 자수가 놓인 십장생 병풍이 둘러진 아늑한 화촉동방. 청사초롱의 붉은 불빛이 농염하게 일렁이는 방 안에는, 무겁고 화려한 붉은 활옷을 입은 연희가 침상에 다소곳이 앉아 수줍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술기운에 살짝 달아오른 도진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덜컥, 굳건한 놋쇠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 그 소리는 더 이상 밤의 어둠에 숨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두 사람의 완벽하고 합법적인 결합을 알리는 황홀한 신호탄이었다. 도진이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연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보석 족두리를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벗겨내었다.
"그토록 좁고 퀴퀴한 흙먼지가 날리던 버려진 별채 바닥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안아야 했던 여인을, 이리 곱고 눈부신 비단금침 위에서 내 정실부인으로 안게 될 줄이야. 내 평생의 운을 오늘 밤 모두 써버린 듯하오."
도진의 꿀이 떨어질 듯 다정하고 깊은 목소리에, 연희가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복숭아빛 뺨을 들어 올리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침상 머리맡의 자개장 위에는 두 사람의 기막힌 인연을 맺어준 그 백옥 나비 노리개가 달빛을 받아 은은하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금박이 입혀진 표주박을 반으로 쪼개 만든 잔에 합환주를 나누어 마셨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독한 술기운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깊고 뜨거운 눈빛에 이미 온몸이 취해버린 듯했다.
도진이 연희의 붉은 입술에 다가가 부드럽게, 그러나 짙게 입을 맞추며 그녀의 화려한 활옷 고름을 천천히, 아주 정성스럽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며 옷가지를 찢어내듯 훔쳐야 했던 과거의 난폭한 손길과는 전혀 달랐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나의 여인이라는 소유욕과, 그녀를 소중히 부서질까 아끼는 깊은 애정이 듬뿍 담긴 묵직하고도 진득한 손길이었다. 붉은 비단 활옷이 스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리고, 눈이 시리도록 하얀 속적삼과 풍만한 곡선이 드러나자 도진의 숨소리가 단번에 짐승처럼 거칠어졌다.
"이제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가문의 어르신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소, 부인. 오늘 밤은 짐승처럼 울부짖어도 좋소."
도진의 뜨겁고 축축한 혀가 연희의 가녀린 쇄골을 지나 깊게 파인 가슴골로 자비 없이 파고들자, 연희는 더 이상 소리를 참아낼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 속에서 황홀하고 낭창한 교성을 마음껏 내뱉으며 도진의 넓은 등판을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이윽고 도진의 크고 단단한 육체가 연희의 젖어 든 아랫도리를 거침없이 뚫고 들어오자, 두 남녀는 동시에 터져 나오는 탄성을 내지르며 완벽하게 하나로 엉켜 붙었다.
합법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정사는 이전의 밀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고 집요했으며, 동시에 아름다웠다. 창밖으로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지고, 방 안에는 두 남녀의 땀방울이 엉기며 만들어내는 질척하고도 끈적한 마찰음,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는 달콤한 신음만이 밤새도록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경계의 담장도, 허망한 50년의 원한도 모두 부숴버린 두 사람의 지독한 사랑은, 그 어느 밤보다도 완벽하고 관능적인 땀내음 속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뜨겁게 밤을 불태우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허망한 사냥개 한 마리로 시작된 50년 가문의 원한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건, 담장 너머로 우연히 던져진 백옥 노리개 하나와 목숨까지 건 두 남녀의 뜨겁고 절박한 본능이었습니다. 억누를수록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이 사랑의 묘약 아닐까요? 오늘 야담광장에서 특별히 준비한 숨 막히게 쫀득한 밀회 이야기, 다들 숨죽이고 즐기셨나요? 다음 시간에도 여러분의 잠 못 드는 밤을 책임질, 가슴이 콩닥거리고 귀가 붉어지는 아찔하고 흥미진진한 고수위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누르시고, 다음 밀회도 놓치지 마세요!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A beautiful Korean woman in elegant traditional Hanbok holding a glowing white jade butterfly ornament, standing near an old mossy stone wall at night, a handsome noble scholar in traditional Korean attire looking at her intensely from the other side of the broken wall, moonlight shining through the wall gap, highly detailed, photorealistic, cinematic lighting, 8k resolution, romantic and steamy atmosphere, 16:9, no text.